[사랑의 편지]최보현/어느 구직자의 변

  • 입력 1998년 4월 8일 19시 47분


IMF 삭풍을 체감(體感)하고 있다. 직장 얻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익히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국가고시 공부를 하다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더이상 공부만 하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름대로 많은 고심을 거쳐 단순 생산직이라도 구하려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내가 찾은 회사의 반응은 한결같이 ‘노’였다. 아무런 자격증도 없었고 공장에서 일해 본 경력도 전무(全無)했기 때문이다.

취업 박람회에 가서 이력서도 내보고 취업정보지나 신문 등에 나오는 회사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요구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다. 모 식품회사. 나이는 조건에 맞았지만 대학을 나와서 곤란하다는 대답이었다. 전문대 졸업자까지는 가능하지만 대학 졸업자는 위장 취업 또는 노조 활동 등을 할 우려가 많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것이었다.

기숙사도 있고 임금도 월 70만원이나(?) 됐기 때문에 그것도 감지덕지해서 성실히 일해 볼 요량으로 야간 작업 2교대도 할 수 있다고 통사정했으나 학력이 대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방식을 바꿨다. 대학 나온 것을 숨기고 고졸 학력으로 회사를 찾아 다닌 것이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지금까지 뭐 했느냐”며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하고 경력이 없다고 퇴짜를 맞았다. 차라리 모집 공고에 ‘학력 경력 무관’이라는 문구가 없었다면 기대라도 안했을 것을….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분식집에서 만화방에서 신체도 건강하고 외모도 그럴듯한 많은 이들을 본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비슷한 처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최보현(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