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밀레니엄]『밀레니엄버그는 정보사회 통과의례』

  • 입력 1998년 4월 8일 14시 16분


“2000년이 되기 전에 외딴섬이라도 찾아 가야겠다. 이착륙 항로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항공기가 추락하고 국방부의 컴퓨터가 마비되면서 핵 미사일이 우리 동네 날아올지도 모르니까.”

요즘 컴퓨터업계에선 이른바 ‘2000년 문제(밀레니엄버그)’를 두고 이런 식의 농담이 유행한다.

밀레니엄버그란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네자리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잘못된 연산처리와 오작동으로 세계적인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가설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천년을 가리키는 ‘밀레니엄’과 컴퓨터의 에러를 뜻하는 ‘버그’의 합성어.

밀레니엄 버그의 발단은 프로그래머와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컴퓨터나 반도체가 연도를 ‘99년 12월 31일’처럼 연도 끝의 두자리만 인식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한데서 생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고 사회전체가 마비되면서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온갖 오해와 터무니없는 과장이 떠돌고 있는 것도 사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밀레니엄버그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차분히 대처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로 가기 위해 거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보면 된다.

밀레니엄버그의 피해대상은 90년대 이전에 보급된 구형 메인프레임(대형컴퓨터) 정도에 불과하다. 486이상의 PC와 신형 메인프레임은 네자릿수로 프로그램이 되어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안심해도 된다.

국내의 경우 수년 전부터 삼성 LG 현대 대우 쌍용 등 국내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대비 작업을 벌여와 이미 문제를 해결한 상태. 올해 말까지 국내 메인프레임의 90% 이상이 밀레니엄버그로부터 해방될 것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를 해결하는 데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정보통신부는 “국내 2000년 문제 해결비용으로 △정부기관 3백50억원 △금융분야 1천2백억원 △민간기업 6천7백억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8천억원 이상의 돈이 기업과 정부의 주머니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컴퓨터 마니아들은 이를 ‘천년만의 축복’으로 비꼬기도 한다.

이로 인해 횡재수가 난 곳은 바로 이를 해결해주는 전문업체들. 10여개에 이르는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나 중소 소프트웨어(SW)회사들이 활약중이다. 삼성SDS LG―EDS에 이어 한국IBM 유니시스 등 컴퓨터 업체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어 물량확보를 위한 각축이 치열하다.

40대 이상 ‘코볼’전문가도 때아닌 좋은 시절을 만났다. 60년대 컴퓨터프로그램 제작언어인 ‘코볼’의 수작업 방식이 해결의 실마리이기 때문.

발빠른 외국의 AIG M&M 등 대형보험사는 밀레니엄버그로 생기는 손해보상용 상품까지 개발해 판매중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정보통신부가 국내해결사례 등을 종합해 최소 최고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2000년까지 순조롭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