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흑두루미를 죽였나

  • 입력 1998년 4월 7일 19시 20분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11마리가 경기도 김포에서 떼죽음당한 채 발견됐다. 지난달 초 경북 구미에서 역시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 37마리가 떼죽음당한 지 달포만의 일이다. 우리의 자연보호의식과 천연기념물 보전관리능력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알게 해주는 사건들이다.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우리 정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적색목록에 올려놓고 각국에 특별한 주의를 요청하고 있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우리나라는 96년 7월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등 희귀철새의 보호연구 및 공동조사에 일본과 협력하기로 하고 ‘한일 두루미보전 행동계획’에 합의한 바도 있다. 그런데도 흑두루미와 재두루미의 수난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면목없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흑두루미들의 죽음은 독극물에 의한 독살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번 재두루미 떼죽음도 밀렵꾼이 뿌려놓은 맹독성 농약이 묻은 볍씨 때문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우리는 천연기념물을 마구 사냥하고 독살해 잡아먹는 나라와 국민이라고 세계인들로부터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설령 흑두루미의 사인이 오폐수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의 책임이 없어지거나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산천을 마구 오염시킨 우리 모두가 결국 그들을 죽인 것이다.

한국은 야생동물보호측면에서 ‘미개국’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얼마전 주남저수지에서 보트를 타고 다니며 공공연하게 철새사냥을 하는 밀렵꾼의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돼 충격을 주었다. 또 휴전선 부근에서 천연기념물인 야생산양을 사살한 밀렵꾼이 붙잡히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야생동물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못된 풍조가 있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몬도가네식 식성’도 문제다. 이런 일들이 외국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우리의 야생동물보호와 관리체제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 흑두루미 등 천연기념물 보호관리업무를 놓고 문화재관리국과 환경부 등이 영역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다. 또 각 지자체는 천연기념물 보호관리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보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연환경보전법과 조수보호법 등의 처벌규정도 제각각이어서 단속과 처벌에 혼선이 일고 있다. 이런 체계로는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정부는 천연기념물은 물론 각종 야생동식물 보호관리체계와 책임한계를 명확히 하고 밀렵꾼에 대한 강력하고 철저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펴나가야 한다. 철새가 살 수 없는 땅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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