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선대인/「한 표」앞세운 손 내밀기

  • 입력 1998년 4월 6일 19시 59분


그 시의원은 요즘 동네 돌아다니기가 겁난다. 선거가 다가오지만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도 반갑지 않다.

4일 오후 경기 고양시 A시의원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팩시밀리에서는 5분이 멀다하고 벨이 울려댔다. 메시지를 뽑아든 A의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십시오’라는 상투적인 문구들 뿐이다.

지방선거를 두달 앞둔 요즈음 A의원이 매주 받는 ‘향우회’ ‘부녀회’ ‘낚시회’ ‘등산회’ ‘조기 축구회’ 등 각종 모임의 행사 초청장은 1백여장이나 된다.

주민들 사이에 지명도가 높아진 결과일 수도 있는 만큼 재선을 노리는 A의원으로서는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구만 ‘정중한 초청’이지 ‘우리 표를 얻으려면 모임에 참석해 한턱내라’는 뜻이다. A의원은 지난 3년 동안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즘은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겁난다.

우연히 마주친 동네 어른이 “자네가 우리 아파트 사람들에게 뭐 섭섭하게 한 게 있는지 아파트 사람들이 이상하게 B의원을 두둔하던데 언제 한번 들러서 인사나 하게”라고 말하는 것은 덜 노골적이어서 그나마 대답하기도 쉬운 편이다.

며칠 전에는 지역구 내 아파트부녀회장에게서 아주 노골적인 전화를 받았다.

“누구는 부녀회 모임에 참석해 점심을 냈는데 A의원도 한턱내야 되지 않아요.”

A의원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전선거운동으로 오해될 수 있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부녀회장이 “당신은 너무 고지식해서 떨어질 거라고 말하는 주민이 많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당신만 깨끗하려고 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아내의 말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깨끗하게 일하겠다’고 했던 다짐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A의원의 솔직한 고백이다.

〈선대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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