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페라「50돌맞이」축제…솔리스트70여명 4시간공연

  • 입력 1998년 4월 6일 08시 34분


48년 1월, 한국 최초의 오페라인 베르디 ‘춘희(라 트라비아타)’ 첫공연 때 일어난 일. 막을 올려야하는데 배역 하나가 비어있었다. 얼떨결에 하인장 역을 맡은 바리톤 오현명. 문을 열며 ‘저녁 준비됐소’라고 한소절 뽑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아차’, 음악이 지나가 버렸으니….

이날 주연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성대에 계란이 좋다기에 무대에서 퇴장할 때마다 계란을 먹어댔다. 이 ‘프리마 돈나’는 다음날 맹렬한 설사를 만났고 교대로 출연하기로 했던 소프라노 김자경이 결국 혼자서 공연을 도맡았다.

며칠 지나 실린 신문의 공연평. ‘금번 오페라 라 쿰파르시타(탱고작품 이름)는….’ 오페라와 춤곡을 혼동했던 것일까. 바리톤 오현명의 책 ‘오페라 실패담’에 실린 일화들이다.

한국의 오페라 역사가 50주년을 맞았다. 전국의 국 시립 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은 ‘한국 오페라 50주년 기념축제 추진위원회’를 결성, 대대적인 기념행사에 나섰고 올해 30주년을 맞은 김자경오페라단도 50년전 ‘그 때 그 작품’인 ‘춘희’ 공연준비에 들어갔다.

기념축제 주요사업은 세가지. 다음달 9일 오후2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는 ‘21세기 한국오페라의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린다. 18일 오후7시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축제음악회가 열리며 때맞춰 음악평론가 한상우가 쓰는 ‘한국오페라 50년 공연사’도 발간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축제음악회. 솔리스트만 70여명이 출연, 아리아 중창 합창 등으로 꾸미는 장장 4시간의 대공연이다. 김자경 오페라단의 창단30주년 기념 ‘춘희’는 28일부터 내달1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소프라노 박정원 신지화(비올레타역) 테너 박세원 안형열(알프레도역) 바리톤 고성진 장유상(제르몽역)이 교대로 무대에 선다. 김자경단장은 “어려움이 컸지만 창단30주년, 오페라 50주년의 의미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죽을 각오’로 공연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쁜 잔치가 줄을 잇지만 오페라계 인사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잔칫집의 형편이 풍성치 않기 때문.

대기업이 문화행사 협찬을 잇따라 취소 또는 축소한 탓에 올 상반기중 서울의 1천석 이상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는 김자경 오페라단의 ‘춘희’로 그칠 전망이다. 02―263―1351∼2(한국오페라50주년 기념축제 추진위원회) 02―393―1244(김자경오페라단)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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