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채권 「상계처리」…증권-보험사 편법 이면계약

  • 입력 1998년 4월 5일 20시 32분


재무구조가 나쁜 증권사들이 ‘영업용 순자본비율’이 떨어져 영업정지 임원문책 등 당국의 제재를 받을 우려가 높아지자 실제로 자기자본은 늘리지 않으면서 후순위채권을 편법적으로 발행해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SK증권의 경우 지난달 A생명보험사와 B생보사에 각각 1천억원씩 단체퇴직보험에 가입하고 2천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해 이를 자기자본에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장부상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높인 것.

이번의 후순위채권 발행은 증권감독원 규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면약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더구나 2천억원이 단체퇴직보험으로 이미 나가 있기 때문에 현금은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따라서 영업용 순자본비율은 실제로 높아진 것이 아니다.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다른 증권사들도 이같은 방법으로 장부상에만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높이는 편법을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편법 행위는 영업용 순자본비율이 150% 미만이면 증감원의 감시 또는 관리대상이 되고 100%를 밑돌 경우 영업정지 임원문책 등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이같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취해진 것.

이에 대해 증감원 관계자는 “이면계약 사실이 드러나면 관계자를 문책하고 후순위채를 자기자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상당수 증권사들이 증감원이 요구하는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맞추기 어려울 전망이다.

▼편법적 후순위채 발행 수법〓SK증권은 2천억원의 후순위채 발행을 위해 보험사와 SK그룹 계열사를 끌어들이는 삼각구도의 차입방법을 동원했다.

SK증권은 △A생보사와 B생보사에 1천억원씩 단체퇴직보험에 가입하고 보험사는 이 퇴직보험금으로 SK상사 SK케미칼 SK가스 SK에너지판매 SK옥시케미칼 등 5개 계열사가 발행한 사모(私募)전환사채(CB)를 매입했다.

SK 계열사는 다시 보험사로부터 CB납입대금을 받아 SK증권이 발행한 후순위채권 2천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여기서 불법적인 부분은 SK증권이 증감원에 제출한 후순위차입신고서 외에 보험사와 별도의 이면약정서를 체결한 것이다.

이면약정서에는 ‘기업여신거래기본약관 7조(합병이나 파산 등으로 신용상태가 현저하게 떨어질 때)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CB원리금과 단체보험의 해약환급금을 상계처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약정대로 상계처리될 경우 SK증권은 보험사에 가입한 2천억원의 단체퇴직보험의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증감원은 후순위채권이 △차입일로부터 상환기간이 1년이상이고 △담보제공 상계처리 만기전 중도상환을 금지한 규정에 부합할 때에만 이를 자기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 후순위채권 ▼

금융기관이 부도를 냈을 때 주식보다는 먼저 변제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일반 채권에 비해 변제 순위가 늦은 채권. 후순위채권은 부채가 아닌 자기자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최근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발행하고 있다.

〈이강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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