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흑색선전에 쐐기

  • 입력 1998년 4월 5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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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6·27지방선거에서 서울 동작구청장에 당선한 김기옥(金基玉)씨는 이듬해 초가 돼서야 편히 잠잘 수 있었다. 선거사범 공소시효 6개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1년이 다 된 무렵인 96년5월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전격구속됐다. 선거운동 때 상대후보가 “김씨는 함께 고시공부하던 친구 8명을 간첩으로 허위신고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하자 거짓이라며 그를 고소했다가 폭로내용이 사실로 드러난 것.

▼김씨에겐 날벼락 같았으나 법의 세계는 냉엄했다. 1심에선 선거법상의 공소시효가 지나서 형법의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면소(免訴)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과 대법원은 입법취지로 볼 때 선거법과 별도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은 ‘당선만 하면 그만’이라는 정치인들의 그릇된 풍조에 쐐기를 박은 판결로 평가된다.

▼이번 판결은 우리 선거의 대표적 고질인 흑색선전에 의한 상대후보 비방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판결로 김씨는 구청장직을 잃었지만 이미 임기 3년을 거의 채운 뒤여서 실효는 적다. 그동안 선거사범을 일소하지 못한 데는 법원의 책임도 크다. 당선무효 요건인 ‘벌금 1백만원 이상의 유죄’에 못미치는 가벼운 형으로 당선을 ‘추인’한 예가 부지기수였다.

▼두번째 지방선거(6월4일)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번에도 깨끗한 선거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후보들 스스로 공명선거 능력이 없다면 법의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선거풍토를 과감히 바꿔나가야 한다. 검찰과 법원의 적극적인 법적용이 필요하다. 특히 흑색선전을 방치하면 참다운 일꾼보다 말 잘하는 술수꾼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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