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하시모토 불황」

  • 입력 1998년 4월 5일 19시 26분


요즘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불황’이란 말이 유행이다. 경기침체와 금융불안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의 경제정책 실패에서 기인했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일본의 97회계연도 경제성장률은 1차 석유위기 후 23년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엔화가치와 주가 채권값의 동반약세(트리플 약세)는 미국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가 일본의 국가신용도와 정부발행 엔화채권 전망을 하향조정한 3일 절정에 달해 ‘블랙 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본 경제위기의 출발점은 작년 4월의 소비세율 인상. 6대개혁의 하나로 재정개혁을 내건 하시모토 내각은 재정구조 개선의 명분으로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높이고 감세 축소, 의료비의 본인부담 증가 등의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러나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긴축정책은 큰 후유증을 초래했다. 소비세율 인상으로 내수소비가 9조엔이나 줄면서 작년 2·4분기부터 불황의 그늘이 깊어졌다.

경기가 갈수록 위축되고 금융기관의 연쇄도산까지 겹치면서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 작년 하반기부터 부양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나마 매번 시기가 늦었다.

그럼에도 하시모토 내각은 정치적 책임문제를 우려해 과감한 정책전환을 미적거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뒤늦은 대응으로 불신감만 커졌고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좀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처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과 비판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경제정책이 내용에 못지 않게 시기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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