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문점서 이산가족 논의도

  • 입력 1998년 4월 5일 19시 26분


남북간 차관급회담을 1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자는 북한측의 전격 제의는 남북한관계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비료지원문제가 북한측이 제의한 핵심의제이기는 하지만 회담이 열린다면 남북한 당국간 회담으로는 3년9개월만에 처음이다. 더구나 북한측이 이처럼 빨리 당국간 대화에 응해 오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출범 초부터 대북(對北)관계에 열성을 보여온 새 정부는 최소한 5,6개월 후쯤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북한의 차관급회담 제의 배경에는 파종기의 절박한 비료사정과 새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북한측은 비료문제 외에 ‘서로 관심사로 되는 문제’도 협의하자고 했다. 진심이 그렇다면 이번 차관급회담은 남북한 직접대화의 물꼬를 트고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남북한간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산가족 상봉문제다. 이유는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산 1세대들은 이제 대부분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그들의 심정은 날이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다. 남북한 차관급회담이 이산가족들의 편지연락이나 생사확인만이라도 주선해줄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도 기왕에 이산가족주소안내소를 설치해 놓고 있는 만큼 남북한 당국이 ‘서로 관심사로 되는 문제’의 제1순위 현안으로 이산가족문제를 다루기 바란다.

회담 장소문제도 그렇다. 북한측은 베이징이 편리한 장소일 것이라고 했으나 편리한 장소로 따진다면 판문점만한 곳이 없다. 남북한 대표가 마주앉아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솔직히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중립적인 장소가 바로 판문점이다. 북한측이 과거에도 남북한 당국의 접촉장소로 활용해 오던 판문점을 피하고 구태여 제삼국의 장소를 고집하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남한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한다는 상징적 명분때문이라면 차관급대화를 먼저 제의한 지금은 판문점에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측의 이번 제의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오직 영농지원과 식량지원을 효과적으로 받기 위한 수단으로 회담을 이용하려 한다면 이산가족문제와 같은 한시가 급한 문제들은 또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측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성급한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다. 정부도 지나치게 고무되어 조급하게 대응해서는 생산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미 밝힌 대북정책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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