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서광석<교통개발연구원 철도연구실장> 김경철<서울시정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서광석실장〓경부고속철도가 사전 준비 없이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착공된 것으로 아는 국민이 있습니다. 감사원 특감결과가 이러한 일부의 부정적 인식을 증폭시키면서 공사중단 여론이 일각에서 이는 것 같습니다.
김경철연구원〓대형 국책사업은 계획 기간을 충분히 길게 잡고 공사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고속철도는 그 반대였습니다. 남의 기술을 빌려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를 건설하겠다면서 초기에 과투자를 했습니다. 정치논리도 끼여들었습니다. 고속철도사업은 현단계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서실장〓70년대부터 고속철도의 필요성을 촉구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83년에는 경부축(京釜軸)의 물류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속도로로는 부족하여 철도 중심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정치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물류난 해소를 위해 나온 발상입니다.
김연구원〓고속철도의 전국 네트워크를 짜기에 앞서 경부축만 서둘렀습니다. 호남과 동서고속철도, 그리고 통일 이후의 큰 틀에서 보지 않고 경부축 공사만 서둘러 강행한 것이 반대 여론의 불을 지피는 데 일조했습니다.
서실장〓초기에 문제가 전혀 없없던 것은 아닙니다. 설계 이후 차량을 선정하는 바람에 설계를 다시 바꿨고 대전과 대구역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지하로 변경하는 낭비를 저질렀습니다. 교량을 박스에서 빔으로, 빔에서 다시 박스로 바꾸는 등 갈팡질팡했습니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행정력이 따라가지 못하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민원이 잇따라 공사가 지연됐습니다.
김연구원〓철도공사는 역사 건설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역사 설계를 하지 않고 노선 공사만으로 공정 몇 %라고 홍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고속철도라고 자랑하면서도 기술이전을 받아야 할 고속철도공단 기술자들이 1년에 1백명씩 퇴직했습니다.
서실장〓경부고속철도 건설의 필요성은 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교통이 가장 혼잡한 구간을 두 곳 들라면 서울∼부산과 도쿄∼오사카입니다. 경부선 서울∼대전 구간은 열차 최대용량이 1백39회인데 1백38회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경부축의 혼잡으로 국민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연간 2조5천억원을 넘습니다.
김연구원〓서울∼대전 구간 고속철도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전면 중단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는 건 사실입니다. 전면 중단 대신에 국제통화기금(IMF) 상황에 맞는 건설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TGV 열차가 들어와도 5년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실장〓재원문제 때문에 서울∼부산 구간을 완전히 새로 건설하지 못한다면 서울∼대구 구간을 먼저 건설하고 대구 이남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공사진행에 가속도가 붙어 96년 84개였던 교량의 상부공 타설이 작년에는 2백21개로 크게 늘어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김연구원〓서울∼대전 구간만 노선공사를 하고 나머지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한다면 서울∼부산 운행 소요시간이 3시간20분입니다. 이렇게 공사를 하면 10조원 정도의 공사비를 들여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에 맞추어 전구간을 개통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고속철도의 70%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한 구간입니다. 용량이 한계에 도달해 속도를 늘릴 수 없는 구간만 새로 건설했습니다.
서실장〓대전까지만 고속철도를 깔고 공사를 중단하더라로 비용 차이가 2조1천억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전∼부산 구간은 곡선반경이 4백m가 되지 않는 지점이 50 곳에 가깝습니다. 시속 2백㎞ 이상인 고속전철이 달리려면 적어도 곡선반경이 6백m는 돼야 합니다. 이를 고치려면 새 노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고속철도 기술을 국산화한 뒤에는 이를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대구 구간만 신규노선으로 건설하면 사업비가 11조8천여억원으로 줄어들고 역사 규모를 줄이면 1조원 정도를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안전도 문제는 작년 미국 WJE가 구조물 강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연구원〓제가 알기로는 곡선반경이 4백m인 지점이 두 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철도청에 문의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철화공사는 열차가 운행하면서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비용과 공정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기존 철도를 전철화하면 호남고속철도와 연계하기도 쉬워 고속열차의 전국적인 이용이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서실장〓지금에 와서 고속철도 건설을 중단하면 그동안 들인 비용과 시간을 고려해볼 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됩니다.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건설이 중단됐을 때 예상되는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은 지어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논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 빨리 매듭지을 것인지를 논의할 때입니다.
김연구원〓하루라도 빨리 논란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고속철도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고속철도는 현재의 철도를 고급화한 수준 정도로 보고 접근하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논란은 사라질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고속철도 구간을 최소화하고 기존 철도 구간을 전철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해야 합니다.
서실장〓고속철도와 기존 철도는 크게 다릅니다. 고속철도는 전자 기계 정보통신 등 최첨단 시설의 복합체로서 항공기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입니다. 과거 경부고속도로를 놓던 때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때 과감히 투자한 결과 다른 나라에 한국형 원자로 기술을 수출할 수 있었고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외국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김연구원〓고속철도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감사원 지적대로 고속철도 공단 책임자를 장관급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중단 논란이 되풀이 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정리〓이 진·황재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