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쟁점대담/공사강행]『신인도추락』『전면재검토』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경부고속철도는 90년 첫 삽을 뜬 후 6년이 지나는 동안 설계가 여러차례 오락가락 바뀌면서 공사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감사원이 3일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특감 결과를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마저 제기되고 있다. 과연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중단해야 하는가. 동아일보는 각계의 권위자를 초빙, 경부고속철도 건설의 타당성을 따지는 긴급 좌담을 3회에 걸쳐 마련했다. 두번째회는 ‘사업비 논란’이고 세번째회는 ‘재원조달 방안’이다.》

◇참석자: 서광석<교통개발연구원 철도연구실장> 김경철<서울시정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서광석실장〓경부고속철도가 사전 준비 없이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착공된 것으로 아는 국민이 있습니다. 감사원 특감결과가 이러한 일부의 부정적 인식을 증폭시키면서 공사중단 여론이 일각에서 이는 것 같습니다.

김경철연구원〓대형 국책사업은 계획 기간을 충분히 길게 잡고 공사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고속철도는 그 반대였습니다. 남의 기술을 빌려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를 건설하겠다면서 초기에 과투자를 했습니다. 정치논리도 끼여들었습니다. 고속철도사업은 현단계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서실장〓70년대부터 고속철도의 필요성을 촉구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83년에는 경부축(京釜軸)의 물류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속도로로는 부족하여 철도 중심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정치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물류난 해소를 위해 나온 발상입니다.

김연구원〓고속철도의 전국 네트워크를 짜기에 앞서 경부축만 서둘렀습니다. 호남과 동서고속철도, 그리고 통일 이후의 큰 틀에서 보지 않고 경부축 공사만 서둘러 강행한 것이 반대 여론의 불을 지피는 데 일조했습니다.

서실장〓초기에 문제가 전혀 없없던 것은 아닙니다. 설계 이후 차량을 선정하는 바람에 설계를 다시 바꿨고 대전과 대구역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지하로 변경하는 낭비를 저질렀습니다. 교량을 박스에서 빔으로, 빔에서 다시 박스로 바꾸는 등 갈팡질팡했습니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행정력이 따라가지 못하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민원이 잇따라 공사가 지연됐습니다.

김연구원〓철도공사는 역사 건설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역사 설계를 하지 않고 노선 공사만으로 공정 몇 %라고 홍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고속철도라고 자랑하면서도 기술이전을 받아야 할 고속철도공단 기술자들이 1년에 1백명씩 퇴직했습니다.

서실장〓경부고속철도 건설의 필요성은 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교통이 가장 혼잡한 구간을 두 곳 들라면 서울∼부산과 도쿄∼오사카입니다. 경부선 서울∼대전 구간은 열차 최대용량이 1백39회인데 1백38회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경부축의 혼잡으로 국민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연간 2조5천억원을 넘습니다.

김연구원〓서울∼대전 구간 고속철도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전면 중단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는 건 사실입니다. 전면 중단 대신에 국제통화기금(IMF) 상황에 맞는 건설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TGV 열차가 들어와도 5년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실장〓재원문제 때문에 서울∼부산 구간을 완전히 새로 건설하지 못한다면 서울∼대구 구간을 먼저 건설하고 대구 이남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공사진행에 가속도가 붙어 96년 84개였던 교량의 상부공 타설이 작년에는 2백21개로 크게 늘어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김연구원〓서울∼대전 구간만 노선공사를 하고 나머지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한다면 서울∼부산 운행 소요시간이 3시간20분입니다. 이렇게 공사를 하면 10조원 정도의 공사비를 들여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에 맞추어 전구간을 개통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고속철도의 70%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한 구간입니다. 용량이 한계에 도달해 속도를 늘릴 수 없는 구간만 새로 건설했습니다.

서실장〓대전까지만 고속철도를 깔고 공사를 중단하더라로 비용 차이가 2조1천억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전∼부산 구간은 곡선반경이 4백m가 되지 않는 지점이 50 곳에 가깝습니다. 시속 2백㎞ 이상인 고속전철이 달리려면 적어도 곡선반경이 6백m는 돼야 합니다. 이를 고치려면 새 노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고속철도 기술을 국산화한 뒤에는 이를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대구 구간만 신규노선으로 건설하면 사업비가 11조8천여억원으로 줄어들고 역사 규모를 줄이면 1조원 정도를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안전도 문제는 작년 미국 WJE가 구조물 강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연구원〓제가 알기로는 곡선반경이 4백m인 지점이 두 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철도청에 문의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철화공사는 열차가 운행하면서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비용과 공정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기존 철도를 전철화하면 호남고속철도와 연계하기도 쉬워 고속열차의 전국적인 이용이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서실장〓지금에 와서 고속철도 건설을 중단하면 그동안 들인 비용과 시간을 고려해볼 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됩니다.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건설이 중단됐을 때 예상되는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은 지어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논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 빨리 매듭지을 것인지를 논의할 때입니다.

김연구원〓하루라도 빨리 논란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고속철도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고속철도는 현재의 철도를 고급화한 수준 정도로 보고 접근하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논란은 사라질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고속철도 구간을 최소화하고 기존 철도 구간을 전철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해야 합니다.

서실장〓고속철도와 기존 철도는 크게 다릅니다. 고속철도는 전자 기계 정보통신 등 최첨단 시설의 복합체로서 항공기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입니다. 과거 경부고속도로를 놓던 때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때 과감히 투자한 결과 다른 나라에 한국형 원자로 기술을 수출할 수 있었고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외국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김연구원〓고속철도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감사원 지적대로 고속철도 공단 책임자를 장관급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중단 논란이 되풀이 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정리〓이 진·황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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