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안기부,쓸쓸한 보국탑」…숨진요원 제막식 조용히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정치공작’혐의로 구속된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이 서울구치소 2평짜리 독방에서 보온병을 꼭 껴안고 첫날밤을 보냈다는 소식이다. 4일로 수감생활 이틀째.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이던 안기부장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추위를 견디느라 애쓰는 모습에서 권력무상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보국탑(報國塔)’은 더욱 쓸쓸해 보인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안기부 보국탑. 헌인릉 주차장과 안기부 청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2백여m 가량 올라가면 왼쪽에 보인다.순직한 안기부원 40여명의 위패를 모신 곳.

북한공작원의 독침에 피살된 해외 지부장, 아프리카 오지에서 풍토병에 걸려 귀국한 뒤 시름시름 앓다 숨진 서기관…. 밤샘 근무가 잦은 안기부에서도 일벌레 소리를 듣던 모 단장은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직원들은 그가 인사 불이익을 우려, 호남출신임을 끝까지 숨겨왔다는 사실을 사후에야 알게 됐다. 보국탑에 이름이 올라간 안기부원의 삶 하나하나는 민족분단 국가안보 지역대립의 아픔을 그대로 안고 있다.

보국탑은 정남향 건물인 안기부 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 늘 그늘에 서 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원들은 죽어서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인가.

그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쓰러졌지만 군인 경찰 공무원과 달리 이름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살아남은 자’들이 그런 순직 동료의 넋을 달래기 위해 탑을 세웠다. 위치도 출퇴근 때 항상 볼 수 있도록 청사앞으로 정했다.

보국탑 제막일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7일. 제막식은 시종 ‘침울’하게 진행되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여당후보가 당선됐다면 성대한 제막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로 ‘패장(敗將)’의 조직이 된 안기부는 제막행사를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한 직원이 말한다.

〈송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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