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형 범죄 너도나도 선처호소』…법관들 『법대로』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IMF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범법자들이 국제통화기금(IMF)상황을 이유로 모든 행위를 합리화하며 죄의식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IMF형 범죄’에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내려오던 법관들이 ‘IMF핑계’사범에 엄한 자세로 돌아섰다.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321호 영장실질심사 법정.

“피의자는 도로교통법 전과가 세번이나 있고 지난달 음주운전때문에 현재 운전면허가 정지된 상태인데 왜 또 술을 마시고 차를 몰았습니까.”

판사가 꾸짖듯 조모씨(29·S통상㈜ 대리)에게 물었다.

조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버스와 지하철이 모두 끊긴 시간이어서 ‘IMF시대에 택시비라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조씨는 이어 “요즘처럼 살벌한 시기에 구속되면 정리해고 1순위”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결국 상습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됐다.

법관들은 IMF이후 즉흥적으로 법을 어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고 이들 대부분이 죄의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지하철 전동차의 선반 위에 있던 승객의 손가방을 슬쩍하다가 붙잡힌 한 20대 실직자가 법정에서 “밖에서는 할 일도 없다. 아예 구속시켜 달라”고 호소해 법원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과 2월 서울시내 절도사건수는 각각 7백72건과 8백29건. 그러나 올해 들어 1월 1천53건, 2월 1천40건으로 크게 늘었다.

최중현(崔重現)영장전담판사는 “특히 아무 생각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단순 절도범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초범이라도 재범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다”고말했다.

서울지법의 한 형사단독판사는 “‘IMF 덕분에’ 선처받은 경제사범중에는 ‘열심히 일해 죄값을 치르라’는 취지를 오해해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IMF 범죄대책팀 연성진(延聖眞) 박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IMF체제는 국가적 재앙일 뿐 나는 어떤 책임도 없다’는 일종의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가 준법의식을 해이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엄정한 법적용을 바탕으로 분별있는 선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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