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엔貨 주가 폭락 불안고조… 한국경제 또 위기

  • 입력 1998년 4월 4일 19시 12분


일본 엔화값이 달러당 1백35엔대까지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 일본금융시장에서 엔화가치 주가 채권값 등이 동시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로 인해 최근 간신히 유지됐던 무역과 금융의 안정기조가 위협받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일본 엔화 가치 폭락에 따른 국내 외환시장의 동요에 대비, 세계은행(IBRD)으로부터 이미 들여온 50억달러 외에 추가도입을 추진하는 등 외환보유고를 서둘러 늘리기로 했다.

4일 한국은행과 재경부에 따르면 달러당 1백40엔대 이상의 엔저(低)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원화환율 역시 상승압박을 받게 되고 하향세를 보이던 실세금리가 반등, 국내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엔화값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실물측면에서 조선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한국 주력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수출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침체 장기화 속의 경기부양책 실패, 금융시스템 붕괴에 따른 대외신인도 하락 등 악순환 속에서 허약해진 일본경제의 체력이 환율이라는 수치로 드러났다”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국민대 송치영(宋致榮)교수는 “일본경제가 근본적인 경기부양과 금융개편 등을 이뤄낼 때까지는 엔화약세가 장기화할 것”이라며 “특히 일본이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으면서 미국에 과도한 자금이 몰려 거품투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교수는 “미국 경제에 이같은 거품이 생겼다가 걷힐 경우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외국계 은행 외환딜러는 일본과 국제사회의 공조가 없을 경우 엔화가치는 1백80엔대까지 폭락(환율상승)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계 일부에서는 엔화의 하락이 중국 위안화와 홍콩달러를 하락시켜 2차 동남아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엔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한국경제의 앞길에 놓인 가장 위험한 지뢰”라면서도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서방선진 7개국(G7)정부가 엔화하락을 방치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추가적인 급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계속 떨어질 경우 양국은 미 재무부 채권(TB) 등 달러표시 자산을 내다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며 “이 경우 미국은 금리가 오르고 주식시장이 침체되는 충격을 받게 되는 만큼 엔화 등의 추가하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G7은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엔화가치 급락에 대한 일본정부의 신속한 대응책을 촉구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갖기로 했다.

도쿄 금융시장 관계자는 “당분간 일본은 트리플 약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엔화환율은 1백40엔대까지 올라갈 것이지만 닛케이 주가는이달 들어폭락해 추가로급락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예상했다.

그는 “일본 금융시장의 회복은 일본정부가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실효성 있고 과감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재경부는 엔화가치 폭락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발행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을 우려, 주간사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펴기로 했다.

〈반병희·이용재기자·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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