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헌진/장군답지 못한 「퇴장」

  • 입력 1998년 4월 3일 20시 01분


2일 밤 12시경 서울 강남성모병원 6층.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이 입원 13일만에 ‘마침내’ 병실문을 나섰다. 검찰조사 도중 자해소동을 벌여 병원에 있다가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순간이었다. 구속영장 집행을 놓고 검찰과 14시간여에 걸쳐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인 뒤였다.

베이지색 코트차림에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 담담한 표정 등은 안기부장 재직시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있으니 ‘환자’일 뿐이었다.

의료진은 일주일 전부터 권전부장이 병실내에서 걸어다니며 가벼운 운동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과적인 치료는 완치됐다는 설명도 있었다. 검찰도 권전부장에 대한 예우와 모양새를 감안, “정장차림으로 당당하게 걸어나와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권전부장은 막무가내였다. 혈당치가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굳이 데려가겠다면 침대에 누운 채로 가겠다’고 버텼다.

결국 검찰은 이날 밤 11시40분경 급히 의료진을 불러 혈당치를 확인, 정상치로 나타나자 구속영장을 ‘강제집행’하기로 결정했다.

병실을 빠져나가는 과정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권전부장은 병원을 떠나기 전 취재진과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로 사전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병실을 나서는 순간 경찰의 철통같은 보호 속에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 한마디라도 들을까 해서 끝까지 따라간 기자에게 짜증 섞인 음성으로 “할 말 없습니다”라고 응답할 따름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전직 거물’의 영장집행 장면을 지켜본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은 권전부장의 ‘치졸한 퇴장’에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그를 태운 승용차가 병원 정문을 나설 무렵. 50대의 한 시민이 승용차를 향해 계란 3개를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네가 무슨 장군이냐.”

〈이헌진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