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실업구제보다 급한 것

  • 입력 1998년 4월 3일 20시 01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동아일보 창간 78주년 기념휘호가 눈길을 끈다. ‘이민위천(以民爲天)’ 곧 백성을 하늘로 알겠다는 뜻이다.

김대통령은 실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실업자를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소외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고 보면 실업문제로 밤잠을 설친다는 말도 빈말은 아닐 것이다.

▼ 국민들 불안감에 시달려 ▼

그러나 정작 밤마다 잠을 설치는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정처없이 거리를 헤매는 실업 당사자들일 것이다. 죄가 있다면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자신이 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지를 묻고 또 물으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샐 것이다. 무서운 것은 ‘버림받은 사람’ ‘불필요한 사람’이 됐다는 절망이다. 그 절망 끝에 실직자들은 목숨을 끊기도 하고 노숙자(露宿者)가 되기도 한다.

하루에 1만명씩 늘어나 이미 1백50만명을 넘어섰을 것이라는 실업자의 평균 나이가 38세, 실업자 자신을 포함한 평균 부양 가족수가 3.5명이라는 노동부의 추산은 실업문제의 심각성을 실감케 한다. 평균치로 단순화하자면 30대 후반의 젊은 가장이 부양하는 최소한 5백25만명의 인구가 졸지에 생계가 막혔다는 얘기다. 아직도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IMF체제라는 ‘미지(未知)의 제도’가 젊은 가장과 그의 가정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일터를 지키고 있는 직장인들도 ‘낯선 체제’가 주는 선례(先例)없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IMF위기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행복을 매일매일 긴박하게 위협하고 있는데도 그 위기의 세계사적 실체와 본질을 주체적으로 읽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오는 불안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살하는 실직자의 절망과도 맥이 통할지 모른다.

고통은 절박하다. 그러나 그 고통에 이어질 또 다른 고통의 성격 크기 기간을 알 수 없다. 고통이 분명 현재의 삶을 덮치고 있는데도 어떻게 하면 가장 현명하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모른다. 설령 고통이 언제쯤 어떤 경로를 거쳐서 끝난다고 해도 그때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이 현재를 가늠하기 어렵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불안은 IMF체제가 갑자기 밖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가치충돌의 불안이다.

김대통령은 동아일보 창간 78주년기념 인터뷰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올해만 꾹 참고 견디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내년 후반까지는 IMF관리체제를 끝내고 내명년부터 세계 선진경제권으로 들어가기 위한 본격적인 가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실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대책도 제시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왜 우리가 지금 꼭 IMF가 제시하는 방향으로만 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개혁의 유일무이한 길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다. 김대통령이 ‘준비’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반드시 IMF식 개혁과 일치한다는 설명도 없다. 김대통령이 ‘시장경제’로 포장한 ‘정상화’와 ‘국제기준’이 미국 영국형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인지의 여부도 모호하다.

▼ 개혁의 철학부터 분명히 ▼

정부의 실업대책에 다분히 유럽형과 뉴딜형이 혼합돼 있는 것도 혼란스럽다. 급한 불은 꺼야 한다. 실업대책도 급하고 IMF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IMF교과서를 익히는 일도 급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임기응변식이어서는 안된다.

지금 더 급한 것은 개혁철학과 정책수단을 분명히 정리 제시하는 일이다. 국민을 불확실성과 가치혼란의 불안에서 해방시켜야 자발적인 고통분담을 이끌어낼 수 있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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