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섭/M&A 활성화정책 마련을

  • 입력 1998년 4월 3일 20시 01분


7일이 되면 21세기가 불과 1천일 앞으로 다가온다. 지난 19세기 말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우리나라가 쇄국을 선택함으로써 근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한 결과 국가의 주권이 넘어가는 비극의 역사와 좌절, 고통과 회한의 세월이 잉태된 지 약 1백년이 지난 시점이다.

서울 시내의 특급 호텔들은 전 세계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로 가득차 있고 M&A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움직임이 전세계로부터 전해져오고 있다. 영미의 투자가들이 투자 수익률을 따지고 숨겨져 있는 채무를 찾아내는 동안 일본과 유럽의 기업들은 소리 소문없이 우리 기업들을 착실하게 인수해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의 정착만으로는 미흡하며 외국인의 직접 투자, 증권 투자와 함께 M&A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장기적인 전략없이 우리 경제가 가장 어려울 때 우리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M&A를 무제한으로 개방하는 것은 경제 주권을 사실상 팔아 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M&A의 활성화는 기업경영권을 상품으로 하는 경쟁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기업 지배 구조의 왜곡 등으로 인한 우리나라 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을 원천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임에 틀림없다. 다만 외국인에 의한 M&A의 자유화가 우리 경제의 구조 개혁을 선도하고 21세기의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통찰력 있고 선견력 있는 전략적 조정이 요망된다.

첫째, 기술이전 고용증진 고부가가치 창출형 외국인투자와 M&A가 활성화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중 제조과정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한다고 믿어 왔으나 21세기의 지식 정보사회에서는 연구개발(R&D), 유통 및 이미지 전달과정에서 대부분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R&D센터, 디자인센터, 핵심부품 제조창 등을 위한 외국인 투자와 M&A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되요새(Enclave)형, 유통구조 지배형 투자와 M&A는 경계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경제 가치사슬의 중심 축을 우리 기업들이 장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와 기업은 선진국과 선진기업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 망한 기업은 도태시키는 기업퇴출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되 동시에 기업창업이 더욱 더 활발해질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개혁하여야 한다. 개방의 부작용은 경쟁으로만 치유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21세기 기업정책의 기본은 단연코 다산다사정책이 되어야 한다. 생태계의 활력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나오며 시장의 활력은 수요와 공급의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기업의 활력도 초과이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도산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보의 편중, 제도와 관행의 불투명성, 그리고 극심한 변화속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성 있는 정보이다. 외국인 투자와 M&A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법령 규정 실무관행 입법예고 중장기 정책방향 및 각종 경제통계와 전망 등을 종합하여 제공하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민간전문가에게 맡겨 구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경신 유지시켜야 한다.

넷째, 외국인들의 출입국관리 행정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세계적인 대기업의 간부사원과 저개발국가에서 온 불법근로자를 비슷하게 대우하는 것이 소위 평등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행정의 수준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지배 종속, 대립과 긴장의 관계에만 익숙해 있었으나 이제 IMF체제로 인한 개방과 개혁의 시대를 맞이하여 협력과 공존, 그리고 상생(相生)의 지혜를 터득하지 않는다면 21세기 선진국 진입에 심각한 갈등과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김일섭<삼일회계법인 부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