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김병모지음「금관의 비밀」,디자인-상징성등 분석

  • 입력 1998년 4월 3일 08시 01분


금관에는 나무가 있다. 나뭇잎도 있고 열매도 있다. 사슴뿔 모양의 장식도 있고 새도 있다. 높은 나무도 있고 낮은 나무도 있다. 그 속에는 꽃과 풀도 있다….

1천5백년 전 한반도에 갑자기 등장한 금관.

그 금관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금관을 쓰고 허리띠에 금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의상을 걸친 채 장엄한 의식을 집전하였을 신라 왕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천년 침묵’을 지그시 견뎌온 역사의 굴절과 숱한 사연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옛날 신라시대 때 펼쳐졌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입술을 달싹달싹하지 않는가.

푸른숲에서 펴낸 ‘금관의 비밀’. 고고학자인 김병모교수(한양대)가 30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고증,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으로 금관의 상징성을 풀어냈다.

“금관의 생김새는 역사의 비밀을 풀어 줄 ‘암호’와 같다. 그런 점에서 고고학자는 머리카락 한 올을 단서로, 미스터리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이라고나 할까.”

수사관은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금관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금관에 달려 있는 여러 장식품들은 왜 저런 모양일까?

신라금관은 그 미적 특징이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조형적 상징성에 대한 탐구는 미미했다.

저자는 금관연구를 통해 당시 통치계급의 종족적 원류, 그들의 사유체계, 미적 감각 등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비취색의 영롱한 빛을 발하며 금관에 달려 있는 곡옥(曲玉).

생김새로는 반달(半月)모양 같기도 하고 맹수의 송곳니(犬齒) 같기도 하지만 신라 금관의 곡옥은 나무 열매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디자인은 나무를 숭배하는 기마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철저한 고증과 현지답사를 통해 ‘온실 고고학’의 한계를 극복한 점.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고고학 유물과 민속품과의 ‘직접 대면’을 통해 역사적 텍스트를 읽어 나간다.

문헌상으로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사실들이 관찰과 조사를 통해 사실(史實)로 입증된다. 타이가 지역의 끝도 없는 백화(白樺)숲을 지나면서 자작나무로 만든 신라 유물과의 관련성을 짚는다. 알타이 지역의 사금생산지에서는 신라에까지 뻗친 그 장대한 금문화의 흐름을 좇는다.

책 갈피갈피 저자가 직접 촬영한 컬러화보가 황금빛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미지만으로도 강렬한 고고학적 메시지를 내뿜는 우리 금관. 각배(角杯)에 술을 가득 담아 마시고, 백마(白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길을 안내해 준다고 믿었던 그 옛날 신라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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