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프로포즈/그때 그곳]과천 서울경마장

  • 입력 1998년 4월 2일 20시 02분


“뛰어라, 뛰어. 천성!” “명지산, 힘내라.”

토요일 오후 4시50분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장. 이날의 마지막 경주에 나선 14마리 말들이 뉘엿뉘엿 기우는 봄날의 햇살을 가르며 타원형 트랙 위를 질주했다. “와…!” 관람석에서 터져나오는 함성, 함성들….

이범희대리(29·냉동물제조수산업협동조합 총무과)도 벌떡 일어나 마권을 움켜쥔 손을 내두르며 돈을 건 말을 응원. 5개월된 아들 의영이를 안고 선 박시자씨(29·주부)도 발돋움을 하면서 7번 ‘명지산’을 외쳤다.

1분20여초의 질주. 말들이 결승점을 화살처럼 통과하자 대형전광판과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우승마가 발표됐다. “1착 4번 클래시돌, 2착 10번 바람몰이, 3착 3번 천성….”

“됐다! 배당률이 3.7배였지?” “흥, 그래봐야 3천7백원이지 뭘.” 자기 말이 10등으로 들어온 박씨의 대답이 뾰로통했다. “그게 어디야. 당신이 잃은 1천원을 빼도 1천7백원이나 벌었는데. 경마의 제1원칙 ‘욕심이 없는 곳에 즐거움이 있다’ 몰라?”

의영이가 태어난 뒤 처음 찾은 경마장. 수협에서 사내연애를 시작했던 95년 11월에 직장동료의 눈을 피해 매주 찾던 곳.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 아닌가 생각했어요. 경마장은 건전한 사람은 다니지 않는 곳인 줄 알았거든요.”(박씨) “주말이면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려는 시자를 꾀어낼 방법이 있어야죠. 마침 경마장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었거든요.”(이씨)

꺼림칙한 마음으로 따라나섰던 ‘경마장 가는 길’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주말마다 경마장에 다니며 박씨는 마권을 구입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씨는 좋아하는 ‘석삼자’ 3번, 박씨는 ‘행운의 7번’에 언제나 5백원, 1천원씩을 두세경주에 걸었다. 운좋은 날은 배당률 50배로 저녁값이톡톡히떨어졌다.하루종일 제일많이잃은 날은1만원 정도.

점심은 경마장안 ‘그린식당’에서 6천원짜리 산채비빔밥으로 해결.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펼쳐지는 경주를 보는 1,2분씩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경마공원의 호숫가 벤치에서 수많은 얘기를 속닥였다. 쌀쌀한 겨울날에는 마사박물관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이어진 데이트.

1달반만에 경마장데이트에 변화가 왔다. 95년12월17일 일요일. 12월20일로 폐장하기 전 마지막 경마였다. “추운데 또 경마장?”(박씨) “춥다고 말이 안뛰나….”(이씨)

오후 5시경 마지막 경주에 또다시 3번, 7번 연승식 마권에 1천원씩을 걸었다. 말들이 경주선에 들어서고 출발 10초전.

“니 내랑 살래?” “뭐라구?”

아연한 표정의 박씨가 입을 달싹이려는 순간 말들이 뛰기 시작했다.

“어, 아, 와!” “뛰어! 뛰어!” 스탠드의 열기에 둘은 휩쓸려 버렸다.

“와! 이겼어, 우리가 이겼어. 범희씨.” “그래, 그런갑다.”

손을 붙잡고 기쁨에 겨워 뛰던 둘. 머쓱해지던 한순간이 지나 박씨가 입을 뗐다. “아까 했던 말…. 그러지 뭐.” 96년9월 결혼에 골인.

결혼후 직장을 옮겼다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최근 퇴직한 박씨. “우리 나중에 의영이 말 타는 법이나 가르칠까?” “일단 아빠 등에 올라탈 때까지 키워보구….”

[경마장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경마장역. 승용차편으로 가려면 사당사거리에서 과천방향으로 남태령고개를 넘거나 양재동에서 양재대로를 타고 과천방면으로 가다보면 표지판이 보인다. 3천대 규모의 무료주차장이 있으며 평일은 언제나 주차가능. 주말에는 오전에 주차장이 차버려 빠져나가는 차량의 대수만큼만 차를 입장시킨다. 시내버스는 없고 주말에는 안양시 인덕원사거리에서 오전9시∼오후2시 30분 간격으로 무료셔틀버스운행.

[경마 이렇게 즐기세요]

▼승식〓서울경마장에서는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등 3가지 마권을 판매한다. 단승식은 10∼14마리가 달리는 경주에서 1착하는 말 1마리를 맞히는 것. 연승식은 자신이 선택한 2, 3마리 중 1마리라도 3착 이내에 들어오면 들어온 말에 대해 배당받는다. 복승식은 1, 2등 말 2마리를 순위에 관계없이 맞히면 된다. 초보자에게는 단순한 단승식과 연승식이 유리.

▼마권구입법〓경마장 곳곳에 있는 마권구입처에서 OMR카드에 컴퓨터용 수성사인펜(3백원)으로 경주번호 말번호 승식 구매액을 기입해 돈과 함께 제출. 구입액은 최저 1백원부터 최고 10만원까지.

[이곳에도 들러보세요]

▼마사박물관〓1백23평 규모로 한국의 마문화(馬文化)유물 1천3백여점이 전시돼 있다. 연중무휴 무료. 3∼10월 오전9시∼오후6시, 11∼2월은 오전9시∼오후5시. 02―509―1283

▼승마훈련원〓실내마장 원형마장 연습마장을 갖추고 있다. 초보자 중급자 대상의 강습과정 개설. 초보자과정은 8일간 하루 2시간씩, 강습료 20만원. 중급과정 시간당 2만5천원. 입회신청서를 내고 일정을 정한다. 승마가 가능한 바지 평상복차림, 헬멧은 강습기간 중 무료대여. 02―509―1673∼5

▼경마공원〓타원형 경마트랙 가운데에 4만평 규모로 조성된 가족공원. 연중무휴 무료. 산책로 축구장 자전거전용도로 야외공연장 연못 원두막 어린이놀이터 등이 있다. 어린이승마장이 있어 무료로 말을 타거나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야외 전통혼례식장의 무료이용이 가능하며 혼례용품도 무료 대여. 어린이자전거 유모차 휠체어도 무료로 빌려준다. 02―509―1647∼8

▼식당〓경마트랙이 내려다 보이는 복지관내 ‘그린식당’(02―509―1391)에서 깔끔한 한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다. 갈비찜정식(1만2천원)이 유명하며 산채비빔밥 꼬리찜 갈비탕 등이 6천∼1만2천원. 경마장 주변 2㎞이내에 10여개의 고깃집, 6층짜리 관람대건물 각층마다 떡볶이 어묵꼬치 김밥 국밥을 파는 분식점이 있다.

〈박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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