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용/전세금 분쟁

  • 입력 1998년 4월 2일 20시 02분


목동에 사는 연모씨(56)는 “한달 전에 전세금 시세보다 1천만원 싸게 집을 내놓았으나 여태 세들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쉰다. 현재의 세입자는 “계약이 끝나는 4월말에 반드시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조르고 있다. 자기 집은 전세놓고 남의 집에 전세로 살고 있는 최모씨(43)의 사정은 또 이렇다. “우리집 세입자는 계약이 끝난 2월초부터 나가겠다고 성화다. 하지만 내가 세든 집의 주인은 1년만 더 살아달라고 사정한다. 나도 받을 보증금을 받아야 줄 보증금을 주어서 세입자를 내보낼 것 아닌가.”

이밖에도 하소연은 끊이지 않는다. “지방으로 전근하게 돼 집을 옮겨야 한다고 사정해도 집주인은 꿈쩍도 않는다.” “신방을 차린지 석달째인데 총각 때부터 살던 원룸의 보증금을 아직 못받아 이사를 할 수 없다.”

이래저래 티격태격하는 사이 법원 문턱이 닳고 있다. 3월 들어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된 전세금 반환소송은 8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다섯배.

서울지법은 보다 못해 1일부터 임대차사건 전담재판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도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요즘 임대차 분쟁은 사람의 잘못보다는 상황의 탓이 크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담재판부에서는 재판에 걸리는 시간이 1∼6개월인데다 소송비용만도 60만∼1백만원이나 된다는 점을 들어 “법정 밖에서 당사자들 스스로 문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따사로운 햇살조차 야속하게 느껴지는 ‘IMF의 봄’. 서로 등을 토닥거려주지는 못할 망정 법정에 마주 서서 얼굴을 붉히는 광경은 안타깝다.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 전에 집주인은 적금을 깨 보증금의 일부라도 돌려주는 성의를 보이고 세입자는 집주인의 통사정에 귀기울이는 ‘인간적인’ 해결방법은 어떨까.

이철용(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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