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정종욱/홍콩「심포니 1997」

  • 입력 1997년 7월 6일 19시 51분


「심포니 1997」은 홍콩반환 축하행사의 백미(白眉)였다. 馬友友(마우우)의 첼로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 뒤 李太白(이태백)의 시를 노래한 환희의 대합창 속에 막이 내릴 때까지 북경의 인민대회당을 메운 수많은 청중은 숨을 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중국▼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과 고통, 도전과 좌절이 아픔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희망찬 중국의 미래를 노래한 웅대한 합창에 압도돼서일까. 아니면 작곡과 지휘를 맡은 譚盾(담순)이 표현하려 했던, 장구한 중국역사 속에 농축된채 살아 숨쉬는 그 무엇을 조용히 음미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예로부터 중국은 자신과 바깥세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는 세계관 문제로 고민해 왔다. 내부와 외부, 나와 남의 관계를 적절히 정립할 때 비로소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근대국가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었다. 아편전쟁 이전까지는 조공(朝貢)제도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철학이 근대화의 중국적 해법이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중국은 서양에 무릎을 꿇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굴욕을 강요당했다. 전쟁으로 대륙이 황폐화하고 남경학살이 자행되고 대만이 떨어져 나가는 처절한 아픔도 감수해야 했다. 홍콩은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중국 근대화의 산 증인 그 자체였다. 이제 중국이 鄧小平(등소평)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에 따라 근대화의 새로운 해법을 시도한지 20년 가까이 흘렀다. 이 해법은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라 불린다. 서양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적극적 개방정책을 펴고 계획경제의 경직성을 보완하기 위해 자본주의국가의 시장경제적 요소들을 과감히 채택하는 것이 그 골자다. 중국과 외부세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에는 대립과 경쟁의 껄끄러운 관계가 아닌 공존과 공영의 상호보완관계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낸 값지고도 성숙한 세계관이다. 등소평의 실험은 모든 사람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공했다. 오늘의 중국에서 가난과 무기력에 찌들었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를 활보하는 12억 중국인의 발걸음은 활기에 차 있고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신해혁명 1백주년이 되는 2011년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고 있다. 毛澤東(모택동)이 중국을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해방시켰고 등소평이 가난의 서러움에서 탈출시켰던 것처럼 江澤民(강택민)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제3세대 지도자들이 마침내 부국강병의 근대화 꿈을 완성시켜 줄 것이라고 중국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들은 굴욕의 19세기와 시련의 20세기가 사라지고 이제 희망의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홍콩의 어제와 오늘에서 확인하고 싶어한다. ▼화합과 평화의 모델로▼ 중국의 부국강병이 주변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역사를 관류하는 그 무엇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연유하는 오해다. 오늘의 중국은 그 누구보다도 바깥세계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 세계의 도움 없이는 근대화의 꿈이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중국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중국이 근대화의 꿈을 성취하는 것이 주변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힘껏 밀어주어야 한다. 「심포니 1997」이 전하려한 중국의 그 무엇은 공존과 화합의 목소리이지봉쇄와 반패권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래서 담순은 이 심포니를「화합과 평화의교향곡」이라 불렀다. 정종욱(주중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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