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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세상읽기]「골초」의 해외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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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세상읽기]「골초」의 해외나들이

입력 1997-07-05 07:26수정 2009-09-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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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사는 누이집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린다는 명분으로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에 나선 게 재작년 가을.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려니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금연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대한 남아의 기상이 있지, 그렇게는 못하네」싶어 약국에 가서 니코틴껌을 사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니코틴껌을 씹어 가며 좁아빠진 자리에서 먹지도 않는 새우 꼴로 온몸을 꼬부리고 열세 시간 넘게 가자니 「아이고, 이거 날아가는 감옥이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착해서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자마자 누이 부부와 미국식으로 감격의 포옹을 나누는 둥 마는 둥 시원하게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우고 나서 주차장으로 갔는데 참던 담배를 오랜만에 피워 어지럼증이 들어 그랬는지, 원래 그렇게 될 팔자였는지 몰라도 여권과 여행자 수표, 니코틴껌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여권 재발급을 받는다, 수표 분실신고를 낸다 하며 영사관과 은행에 연락하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다. 게다가 시차 때문에 밤이면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는 누이 부부며 냄새난다고 종알대는 조카의 눈치를 보며 빠끔 담배를 피고 있자니 「이 고등학교 화장실같은 감옥에 오긴 왜 왔노」 한숨이 나왔다. 밖에 나가니 또 온통 금연, 금연, 금연. 보기에 멋진 레스토랑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고 담배를 꼬나문 카우보이 그림이 걸린 그럴싸한 술집에서도 피울 수 없었고 안온한 분위기의 찻집에서도 불가능했다. 공원이나 길에서 거지와 같이 피우든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비싸지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술집을 귀신같이 찾아내든지 해야 했다. 「우리나라 만세다, 정말 만세다」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거리를 걷다보니 이상한 사람들이 보였다. 마천루 숲 아래에 사무원으로 짐작되는 남녀 노소가 초조하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비까지 조금씩 떨어지는 아침 나절, 「십 분간 휴식」을 얻은 수인(囚人)처럼 각자 골똘하고 열렬히 니코틴을 섭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쓸쓸하고 고독하고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담배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 나라 담배 회사에 그 나라 주정부와 식품의약당국이 소송을 걸어 천문학적인 돈을 빼앗아냈다는 기사를 보고 문득 그 광경이 담배연기 속에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언제 그런 일이 닥치기나 할까. 담배를 팔고 세금을 떼는 정부가,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파는 걸 적발해서 벌금을 떼는 정부가, 스스로에게 소송을 걸 수 있을까. 성석제<소설가> ◇ 알림 세상읽기의 필자가 바뀝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황인홍씨 대신 소설 「재미나는 인생」으로 최근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성석제씨가 새로 글밭을 가꿉니다. 최연지씨는 계속 쓰게 됩니다. ▼성석제씨 약력 ▽60년 출생 ▽연세대 법학과졸업 ▽86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수상으로 등단 ▽대표작―시집 「낯선 길에 묻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장편 「왕을 찾아서」, 산문집 「위대한 거짓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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