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공허한 여성주간

  • 입력 1997년 7월 1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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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특파원으로 있을 때인 92년 홍콩정청의 한 여성공무원으로부터 『고졸이상의 주부는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당시 한국실정과 비교해 보며 속으로 놀란 일이 있었다. 그는 중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결혼한 뒤에도 맞벌이로 나설 수밖에 없으며 고졸이상의 주부라면 직업을 구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 당시 홍콩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만6천달러였다. 한국도 이제 GNP가 1만달러를 넘어섰고 4,5년 안에 1만6천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맞벌이 주부의 한숨 ▼ 1일부터 7일까지는 올해로 두번째 맞는 여성주간이다. 우연이겠지만 여성주간이 시작하는 첫날 여성경제활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얘기를 들었다. 미혼여성 S씨(28)는 모백화점 홍보팀에서 4년째 근무해왔으나 승진하지 못했다. 입사동기 남성들은 일찍이 계장으로 승진했다. 이 백화점에서는 여직원이 결혼하면 퇴직해야 되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다.S씨는 이런 점들을 시정해 달라고 회사측에 여러차례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자 사표를 냈다. 뒤늦게 담당이사 부사장 등이 나서 『당신만은 예외로 남자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다』며 사직을 만류했다. 남자사원보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1일자로 한 패션 회사로 직장을 옮겨버렸다. 한국여성취업률 그래프를 그리면 M자 곡선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결혼과 육아문제에 부닥치는 25∼29세에 취업률이 뚝 떨어진다는 것. 여성경제활동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있다고 하지만 맞벌이주부 직장생활에는 이런저런 현실적 제한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전주한일신학대 교수인 신혜수씨(한국여성의 전화 회장)는 직장여성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여성일 남성일이 따로 있다고 치부하는 성별직업분리의식과 직장내 성희롱 외에 보직 연수 임금 승진에서의 남녀차별을 꼽았다. 신교수는 특히 육아와 가사분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임금 승진 등의 차별은 제도와 법률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육아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많은 직장여성들이나 사회경제활동에 나서려는 여성들이 골치아프게 생각한다. 그만큼 관심도 높다. 정무제2장관실과 지방자치단체, 일부여성단체가 주관하는 여성주간행사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올해 주제는 「여성―새로운 문명창출의 주체」이다. 행사는 강연 세미나 토론회 기념식 등이 주류를 이루고 세미나의 주제는 「여성정책의 현황과 전망」. 이런 식이다. 여성주간행사가 많은 여성의 관심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여성주간이 허공에 떠있는 것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큰 호응을 얻기 어렵다. ▼ 구색만 맞추려는 정책 ▼ 정부가 여성정책을 어느 정도나 중시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하나 있다. 여성주간 행사예산이 7천만원이란다. 최근 있었던 환경주간이나 바다의 날 행사에는 정부예산이 3억원이상 들었으며 관련 업체나 조합의 부담액까지 합하면 각각 20억원은 넘었을 것으로 추산하는 사람도 있다. 구색이나 맞추려는 식으로 부처간 여성정책의 조정역할을 정무제2장관실에 맡겨놓고 정부가 여성발전을 위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정무제2장관실 1년예산이 20억원정도에 불과하다니 조금 심한 것 같다. 「내 딸이 대학을 나와 취업했을때」 S씨와 같은 좌절을 겪지 않도록 하려면 아무래도 정부차원에서 먼저 손을 써야 할 것 같다. 이영근<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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