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27)

  • 입력 1997년 7월 1일 08시 08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80〉 발표를 마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왕의 앞을 물러나 나의 처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왕이 몸소 나를 찾아와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형제여, 나는 그대를 나에게 보내주신 알라께 감사한다. 정말이지 그대는 나와 이 나라의 장래에 길을 열어주었도다. 그런데 나는 그대에게 또 한가지 부탁을 하기 위하여 이렇게 찾아왔으니 거절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왕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왕의 손에 입맞추며 말했습니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저의 좁은 소견이 임금님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저로서는 더없이 기쁠 따름입니다. 그리고 다른 부탁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저는 임금님의 노예일 따름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왕은 크게 만족해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드리고자 하는 또 다른 부탁이란 나를 대신하여 공주에게 성은을 내려달라는 것이야』 왕의 이 말을 들은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랑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주와 그짓을 해야 하다니, 정말이지 나는 생각만 해도 싫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의 여행을 통하여 두 번 결혼을 한 바 있는데 그때마다 큰 불행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다시는 여자 문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저같이 천한 것이 어찌 감히 임금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저는 무엇이든 임금님을 돕고 싶습니다만, 그 일에 관한 한 제 스스로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말했습니다. 『그대는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대야말로 신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네. 그대는 외국인인데다가 회교도로서 신앙심이 깊고, 인생의 경륜과 높은 통찰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그리고 나의 중신들과 장로들마저도 그대가 바로 현자 두반과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네. 그러니 그대의 형제인 나를 위하여 부디 나의 부탁을 마다하지 말아주기 바라네』 왕이 이렇게 말하니 나로서는 더 이상 무어라 말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내 꾀에 스스로 걸려든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벌써부터 뭔가 좋지 못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왕궁은 삼 년 전에 결혼한 공주의 신방을 차리느라고 분주하였습니다. 시녀들은 공주를 목욕시키고 가장 화려한 옷을 입혔으며, 공주의 남편 되는 젊은이는 이발을 하고 목욕을 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공주의 성침이 거행된다는 소식이 이 작은 도시 국가 안에 삽시간에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습니다. 불만에 찬 표정들로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술이나 마시던 청년들은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고, 나태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처녀들은 서둘러 몸단장을 했습니다.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어린 학생들은 까닭도 모르면서 책상을 두들기며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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