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 입력 1997년 7월 1일 08시 08분


하나의 관념을 극대화시켜 실험하듯 써내려 간 소설. 실험대상은 「유토피아는 그 불가능으로 존재한다」는 명제다. 관념의 외피(外皮), 소설의 스토리는 매우 통속적이어서 실험은 「수월하게」 진행된다. 등대지기를 자청한 대학강사 동수, 그의 선임자인 진호, 그리고 그들 곁에 머무는 여자 수진. 이들은 한결같이 「아비」가 제구실을 못하는 결손가정 출신. 「아비」가 상징하는 뭍의 세계, 질서와 폭력이 지배하는 힘의 세계에서 내몰린 추방자들이다. 동수는 「회색분자」이며 진호는 「빨갱이 골수분자」다. 그리고 수진은 실연과 낙태의 상처를 안고 내팽개쳐졌다. 이들은 「아비」가 없는 등대에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들은 한동안 고기비늘처럼 잔잔한, 등푸른 바다의 품에서 유토피아의 달콤한 평화에 젖는다. 그러나 바다는 몸을 뒤척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안도했던 바다의 푸른 등은 기실 백악기의 거대한 공룡, 그의 신체의 일부였던 것.공룡의 뒤척임은 수진을 차지하려는 두 남자의 소유욕과 질투로 나타난다. 한 여자를 독점하고자 하는 복수(複數)의 욕망은 아비가 없는 등대에서 끝없는 폭력과 소외로 이어지고…. 그래서 진호는 「수진의 성(性)을 공유하자」고 제의하지만 그들은 「번갈아 그녀와 살을 섞으면서도」 합의에 이르지는 못한다.결국 소설은 그들이 「아비의 뭍」으로 회항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어쩌면 한 여름밤의 꿈처럼 허망하기만 한 결미(結尾). 그래서 다시, 등대가 그리워지는…. 박석근 지음(책세상 7,000원)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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