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경제회생 주역 세디요대통령]과감한 민영화 단행

  • 입력 1997년 3월 13일 08시 18분


[워싱턴〓홍은택특파원] 지난 95년 10월 26일은 1백년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은 멕시코가 놀라운 반전을 시작한 날이었다. 농민폭동과 정변, 그리고 6.9% 마이너스 성장 등 온갖 악재들이 중첩된 이 시기에 멕시코의 근로자와 농부 기업인 연방정부 중앙은행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경제회생을 위한 연대」선언에 서명했다. 선언문에서 대표들은 경제회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키로 결의하고 그 대신 되도록 빨리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질임금을 인상시키며 가격안정을 이룰 것을 약속했다. 그 이후 1년만에 멕시코 경제는 실업률 물가 이자율 페소화가치 무역수지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대반전의 주역은 에르네스토 세디요대통령. 94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는 「핀치히터」였다. 94년 3월 65년동안 정권을 독점해온 제도혁명당(PRI)이 지명했고 자신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도왔던 대통령후보 도날드 콜로시오가 선거 직전 피살되자 대타로 나서서 인구 1억명의 멕시코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때 나이 42세. 49%의 득표율은 역대 최저였고 당내외 기반도 전혀 없었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엘리트였지만 전임 카를로스 살리나스대통령 시절 경제기획원과 교육부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었을 뿐이었다. 세디요는 그러나 이러한 약점을 모두 강점으로 전환시켰다. 첫 조각에서 검찰총장에 뜻밖에 야당의원을 기용했고 후임 법무장관에 시민운동가를 임명했다. 이어 의회와 지방정부에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켰고 사법부를 명실상부하게 독립시켰다. 그의 최대 치적 중 하나는 법치(法治)원칙을 확고히 한 점이다. 이는 단임 대통령의 최대 무기인 여당내 차기 대통령후보 지명권을 포기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독재자를 싫어하면서도 독재적인 통치에 익숙했던 멕시코 국민들은 처음엔 그의 이같은 스타일을 생소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 멕시코인들은 항만 공항 철도 등의 민영화와 규제 철폐, 대외개방과 같은 경제정책 못지 않게 제도적 정치 민주화를 통해 각 부문의 잠재적인 활력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 경제 회생의 가장 큰 동력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