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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문학기행]「오이디푸스王」과 델포이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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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문학기행]「오이디푸스王」과 델포이 신전

입력 1997-03-12 11:54수정 2009-09-27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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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는 과연 신들이 사는 세계 같았다. 우리가 백두산을 그렇게 대하

듯 일찍이 그리스인들 역시 성산(聖山)으로 믿어왔던 해발 3천m의 거산(

巨山), 파르낫소스 연봉의 지붕 밑에 서 있었다.

깎아지른 산봉우리의 벼랑에 안겨 다시 수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굽이굽이

펼쳐지는 계곡과 멀리 코린토스만의 푸른 바다를 굽어보는 곳, 흡사 그것은

대자연의 추녀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제비집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는

제비도 인간도 지내지 않는다. 인간은 지상에서만 살 수 있는 법, 이 높은 곳은

오직 신들 만의 공간이다.

▼ 神은 운명의 다른 이름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없는 힘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을 지배하는 그 운명이란 무엇인가.

이 추상적인 명제를 고 대의 그리스인들은 「신」이라는 말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인간이란 그 누구라도 절대의 운명―신의 명령에 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인간이란 그 누구라도 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나 삶의 보편적인 원리를 위배하면 커다란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아마도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은 이같은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형상화한 고전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철학자 야스퍼스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더불어 세

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비극작품으로 일컬어진 「오이디푸스왕」은 주어

진 운명―신의 섭리에 도전하다가 파멸한 한 영웅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델포이의 신탁에 의하면 시부스 왕국의 왕자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커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려지게 된 그는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것은 일견 성공한 듯이 보였다.

그는 이 나라의 큰 재앙이었던 스핑크스를 물리쳐 왕으로 추대되고 명예와 권력과 사랑을 얻지만 그의 이같은 세속적 성공은 한편으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분별심을 잃게 만든다.

자신을 망각한 그의 인간적 오만은 점점 더 커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제 신탁―신의 명령이나 운명 같은 것을 경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신들이 이를 그대로 지켜볼 리 없었다.

시부스 왕국은 신의 저주로 황폐해지며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의 가공할 비밀―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친 아버지 살해와 친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제 운명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지오카스터는 목을 매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뽑아 장님이 된 채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그리스 전국을 방랑하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필자는 앞에서 고대 그리스인이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은 힘, 즉 「운명」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또 신이란 무엇인가. 한국적 사상으로 천(天) 지(地) 인(人) 삼세(三世)가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늘임」(人乃天·인내천)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어떤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원리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파멸은 그가 이 인간의 보편적 이고 근원적인 원리를 위배한데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천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상으로 남는다.

그것은 그가 제왕이었거나 괴물 스핑크스를 물리친용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가 될 줄 알면서도 스스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점, 그로 인해 운명이 하나의 심판으로 다가왔을 때 그것을 변명하거나 혹은 책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여 스스로 파멸을 선택했다는 점 바로 그 때다.

「오이디푸스왕」은 시작도 그렇지만 극적 전환을 가져온 주인공의 진실 발견도 델포이의 아폴로 신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BC468년 디오니소스 축제때 이 작품이 전 그리스 비극 경연상을 받아 처음 공연된 곳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더불어 이곳 델포이의 극장이었다고 한다.

▼ 진실 밝히는 용기 돋보여

그러나 노을에 물든 만년설을 바라보면서 델포이 신전을 뒤로 하는 필자의 감회는 착잡하기만 하였다. 보편적인 가치와 상식의 위배가 일상화된 우리의 정치 현실에 과연 오이디푸스와 같은 영웅은 없는 것인가.

고대 그리스인이 그랬던 것처럼 거산에 델포이 신전을 지을 신관은 아직 이땅에 도래하지 않은 것인가.

(오세영/서울대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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