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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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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

동아일보입력 1997-03-11 19:45수정 2009-09-2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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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기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제 본보 사회면에 실린 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는 차라리 처절하다. 5백평짜리 공장을 짓기 위해 尹炳吉(윤병길)씨가 행정기관을 뛰어다닌 거리는 14만㎞, 제출한 서류만도 1만쪽이 넘는다. 그러고도 6년째 공장 허가는 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윤씨가 날린 돈만도 10억원에 이른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기업을 살리고 경쟁력을 높여 세계시장에 물건을 팔고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겠는가. 극심한 기업규제, 경제의 발목을 잡는 행정관행이 뿌리뽑히지 않는 한 경제활력은 기대할 수 없다. 얼마 전 1억3천만원짜리 공장을 짓는 데 3천만원의 뇌물을 주어야 했다는 재이손산업 李永守(이영수)사장의 증언도 생생하다. 기업 현장의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이 정부들어 2천5백여건의 규제를 완화했다는 발표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조그만 공장 하나 짓는데 최소한 20여개의 법률을 통과해야 하고 여기에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 등을 충족시키려면 관청 허가는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라고 기업인들은 한탄한다. 사라질 줄 모르는 뇌물관행, 국민총생산(GNP)의 2.7%, 9조4천억원에 이른다는 각종 부담금에 기업들은 허리가 휜다. 좋은 아이디어나 제품을 개발하고 공장 허가받는 데 시간 다 허비하고 경영외적인 부담 때문에 허덕여서야 생존경쟁이 치열한 국제무대에서 기업이 살아날 길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이 경영비용이고 보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고 수출시장을 빼앗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영국에 투자한 한 기업인은 현지 정부로부터 파격적인 세금경감과 값싼 공장용지, 자금지원 혜택 약속을 받았다. 80년대 이후 미국은 예산당국 산하에 규제감시기구를 설치, 규제완화에 소극적인 행정기관에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수년전 규제완화 인원축소 등을 위해 아예 규제가 심한 관세청건물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행정규제완화를 통한 경쟁력 높이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판에 우리는 아직도 겹겹의 규제를 없애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행정에서 탈피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면 행정의 기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서비스행정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앞서야 한다. 아무리 규제철폐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특별법을 만든다 해도 행정의 기본원칙이 올바로 서 있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과거 규제완화 실패 원인은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각오로 규제완화 작업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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