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동외교 난관]아랍권,美거부권행사 일제 반발

  • 입력 1997년 3월 11일 19시 45분


[이기우 기자] 그동안 균형감각을 잃고 표류해온 미국의 중동외교가 지난7일 유엔의 대 이스라엘 비난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랍진영은 물론 서방의 우방국들마저 『미국의 거부권 행사는 친(親)이스라엘 노선을 넘어선 매우 편파적인 조치』라며 『중동 평화구도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고 맹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온건노선을 표방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온건 아랍국가들도 무기를 포함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 미국의 전횡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하야트지는 최근 1면 칼럼을 통해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왜 아랍국가들은 미제무기를 비싼 가격에 사들여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미국과 일절 거래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의 알 와프드지도 1면 논평에서 『미국의 행위는 피를 부르는 폭거』라며 아랍권이 단결해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전국에 방영된 TV연설에서 『이례적일만큼 공정한 안보리의 결의안을 미국이 무산시킨 것은 무지와 오만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아랍권의 반미(反美)분위기가 불매운동 등 행동으로 옮겨질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나 아랍국가들의 여론은 『미국이 현재 쿠바나 이라크에 강요하고 있는 금수(禁輸)조치의 혹독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기울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 평화협상의 중재자를 자임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땅과 평화의 교환」합의(마드리드협정)를 큰 외교적 치적으로 내세워 왔으나 이번 거부권행사로 미국의 중동외교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유태인의 「입김」을 반영하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도마위에 오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임명할 당시 미 행정부가 아랍권의 반발을 의식, 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에 이르러서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