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3)

  • 입력 1997년 3월 9일 09시 20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18〉 길가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을은 그렇게 며칠 사이에 색으로 깊어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꼭 일주일만의 등교길이었다. 다른 때처럼 전철 역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오며 그녀는 그 시간에 맞추어 독립군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철역 계단을 올라오며 처음 본 것도 비스듬하게 펼쳐져 있는 하늘을 반쯤 가리고 선 노란 은행나무였다. 아, 이제 정말 가을이야. 그녀는 가을 한 중간에서야 가을을 느꼈다. 그리고 노란 은행나무 잎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며 전철역 입구의 마지막 계단을 올라왔다. 『서영아』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분명 귀에 익은 독립군의 목소리였다. 『서영아』 다시 독립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불렀다. 독립군은 전철역 입구 저쪽에 비스듬하게 세운 오토바이 위에 몸을 얹은 채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마 그렇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어떻게…』 정말 목이라도 멜 것 같은 마음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우연처럼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 자리에 그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기다렸어』 그가 헬멧을 벗은 채 반갑고도 기쁜 얼굴로 빙긋 웃었다. 『오토바이는…』 다른 할 말도 많았다. 그런데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난번 바로 그 자리쯤에서 저절로 시동이 꺼지던 오토바이에 대한 안부부터 먼저 물은 셈이었다. 『고쳤어. 그런데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지난 수요일부터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집안에 누워 있으며, 또 엄마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내내 그의 전화만 기다렸다. 때로는 자기 방에 놓여 있는 전화가 고장이 아닌가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걸 들어 뚜―하는 소리를 확인하곤 했다. 『아뇨. 좀 아팠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얼굴도 안 좋아 보이고』 『그런데 여긴 어떻게?』 그를 보자 정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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