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준고위급회담 의미]北-美 관계 급진전 신호

  • 입력 1997년 3월 9일 09시 20분


[뉴욕〓이규민·워싱턴〓이재호특파원] 北―美(북―미)관계가 다시 급속히 진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7일 뉴욕회담에서 대북(對北)경제제재 추가 완화문제를 비롯한 현안들에 대해 비록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대화의 채널을 놓는 데는 성공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북한은 공동설명회 참가를 빌미로 북―미간 접촉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소득을 올린 셈이다. 金桂寬(김계관) 북한 외교부부부장이 뉴욕 회담에 이어 10일 워싱턴에 와 미정부 실무자들을 만나 양국관계의 진전에 대해 다시 논의한다는 것도 가볍게 보아넘길 사안은 아니다. 김은 지금까지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 인사들과는 격이 다른 외교부 부부장(외무차관)으로 그의 방문이 주는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측 관계자들은 공동설명회와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진전에 대해 『지난해 9월 잠수함 침투사건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간 데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잠수함사건 이전에는 북한외교부 부부장의 워싱턴 나들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북한은 뉴욕회담에서 앞으로 계속 접촉을 갖기로 한 것외에는 미국측으로부터 아무런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은 회담에서 △해외자산동결 조치 철회 △국제금융기구 가입지원 △미국 기업의 대북직접투자 촉구 △한국기업의 대북진출확대 지원 등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해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4자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 연계해서 추진한다는 것이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고 보면 북한이 뉴욕회담에서 답을 얻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식량지원 부문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측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만 말했다. 이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4자회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할 때 지금 시점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북―미관계는 4자회담 또는 남북대화와 사실상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4자회담에 진전이 없는데 북―미가 일방적으로 관계개선을 서두르기란 쉽지 않다. 한국정부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고 미국도 상당 부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4자회담에 진전이 없다고 해서 북―미관계도 똑같이 진전이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들이다. 공동설명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런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일단 4자회담에 참여해 장(場)을 벌여놓기는 하겠지만 4자회담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이 시간을 이용해 북―미관계 진전을 서두르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상당부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이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미국의 완충역할에 의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오는 것은 어느 쪽도 원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가 불안정해지면 동북아가 불안정해진다. 이는 결코 미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클린턴행정부의 이른바 연착륙(소프트랜딩)은 이같은 목표를 위한 정책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역시 체제에 대한 어떤 충격과 변화도 원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곧 북―미관계 개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코스임을 의미한다. 비록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지금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의 표현처럼 이제는 「시간의 문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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