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성적 빼내 판촉악용…「성적프라이버시」침해 극성

  • 입력 1997년 3월 6일 19시 56분


지난 2월 서울 성수여중을 졸업하고 H여고에 진학한 박모양(16·서울 성동구)은 졸업직후 「블랙박스」라는 학습지를 발간하는 교육평가연구원이 부모에게 보내온 우편물을 받고 깜짝 놀랐다. 학습지광고물과 함께 「중학교과정 모의고사성적을 분석해보니 도덕과 영어가 취약하고 과목별 편차가 심하다」 「대학수능시험 예상성적을 뽑아보니 80점(20%)이 반영되는 외국어영역이 비교적 저조하니 대책이 시급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 최근 일부 학습지출판사와 입시학원 등이 브로커들로부터 학생들의 성적자료를 빼내 광고물 등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브로커들은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자료를 빼낸 뒤 학습지회사와 접촉, 자료를 팔고 있다. 교육평가연구원측은 『지난해말부터 최근까지 이같은 내용의 우편물 2만여통을 전국 40여개 학교 학생들에게 보냈다』고 시인하면서 『신원을 알 수 없는 30대남자 2명에게 한 학교당 4만∼5만원을 주고 학생들의 성적자료와 주소가 담긴 자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 I학원 정모씨(32)는 『브로커들이 1년에 한두번가량 전화를 걸어 지역과 학교별로 학생들의 성적자료를 뽑아줄 테니 사겠느냐는 제의를 해오고 있다』며 『대부분의 학원과 학습지회사에서 이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K사 등 모의고사실시기관에는 『왜 성적자료를 유출했느냐』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쳐 자체 직원들과 모의고사성적 전산처리를 의뢰한 전산회사에 대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박양의 어머니 이모씨(43)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다름없는 학업성적이 유출되고 있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동안 성적이 뛰어나다고 자부해온 딸이 「수도권대학에나 갈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좌절감을 느끼는 등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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