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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재미교포작가 이혜리씨의 「할머니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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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재미교포작가 이혜리씨의 「할머니가 있는 풍경」

입력 1997-03-06 07:42수정 2009-09-2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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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기자]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비극적인 현대사를 온몸으로 감당해온 여인들의 삶은 소설보다 기구하다. 신세대 재미교포작가 이혜리씨(32)의 영문소설 「Still Life With Rice」를 번역한 「할머니가 있는 풍경」(디자인하우스 펴냄)에는 지혜와 용기로 역경의 세월을 헤쳐나간 한 여인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세때 미국으로 이민간 이씨는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이 작품에서 외할머니 백홍룡(84)의 일생을 토대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생생하게 복원해 냈다. 백할머니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 중국땅으로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고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되돌아왔지만 또다시 분단의 질곡속에 이산의 아픔을 겪으며 이민길에 올랐던 비극의 주인공이다. 원제목이 「쌀 정물화」 또는 「아직도 쌀로 살고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이 소설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문단으로부터 「젊은 한국계 여인의 뿌리찾기」 「침략과 분단의 슬픈 역사를 가진 한반도에서 건져올린 빛나는 이야기」 등의 찬사를 받았다. 이씨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녹음한 2시간짜리 테이프 50개를 바탕으로 할머니의 일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한국과 외할머니가 피란했던 중국지역을 직접 답사했던 이씨는 『아직도 한반도에 냉전으로 인해 혈육을 그리며 고통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양출신인 백할머니는 22세때 세살 연하인 이득필과 결혼,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한 시절을 보냈으나 일제의 핍박이 점점 심해지자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참깨장사와 아편밀매로 많은 돈을 벌어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나라잃은 민족의 설움은 여전했다. 아버지와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던 중 해방을 맞은 백할머니는 고향부근에 엄청난 땅을 사서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38선 이북을 장악한 공산정권의 토지개혁으로 땅을 모두 빼앗기고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백할머니는 피비린내나는 한국전쟁을 오히려 탈출의 기회로 삼았다. 남편과 큰아들을 먼저 남쪽으로 피란시킨 뒤 뒤따라 남하했지만 17세이던 큰아들과 이산가족이 됐다. 게다가 디프테리아에 걸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불운이 겹쳤다. 신을 증오하면서 혼자 삼남매를 키워야 했던 백할머니는 몸서리쳐지는 전쟁의 비극을 피해 가족들을 먼저 이민 보낸 뒤 자신도 76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백할머니는 그러나 이국땅에서도 피란길에서 잃어버린 큰아들을 찾아야 한다는 염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드디어 91년 6월 큰아들이 평양에 살아있다는 편지와 사진을 입수, 아들의 생존을 확인했지만 아직도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딱 한번만 이 지친 품안에 내 아들을 안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고 나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한다』 백할머니의독백에는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분단과이산의아픔이생생하게 배어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 작품에 대해 『비극적인 가족사와 우리민족의 굴곡많은 현대사를 성실하게 복원해 내고 있다』며 『젊은 세대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거에의 향수와 잃어버린 가족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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