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高生 「추운 봄」…취직 합격하고도 발령 안나

  • 입력 1997년 3월 5일 19시 46분


대기업 H사의 취직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이모양(서울 모여상 졸)은 지난 1월말 회사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여사원 신규채용이 예정보다 6개월이상 늦어지니 다른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양해하겠다」. 3남매 중 맏이로 하루라도 빨리 취직해 홀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양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통고였다. 이양은 『입시도 취직시험도 다 끝난 뒤에 이같은 통지를 받게 돼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양은 지금 어머니의 가게일을 도우며 발령이 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최근 덕수상고 성동여실고 동부여상 한양공고 서울북공고 등 서울시내 10여개 실업계고교 졸업생 중 지난해 1학기말 현대전자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LG전자 LG화학 효성물산 등 대기업 입사시험에 최종합격하고도 지금까지 발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학교당 2∼10명에 달한다. 이같은 현상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측이 당초의 충원예정 인원을 무리하게 줄이는 바람에 발생한 것. 예년의 경우 실업계고교 졸업생은 대개 3학년 1학기말에 취직여부가 결정된 뒤 늦어도 11월말까지는 발령을 받았다. 이들 기업은 현재 『몇개월 뒤에는 발령을 꼭 내겠다』는 막연한 약속외에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해 사실상 졸업생들이 다른 직장에 취업해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8월 상고졸업생 65명을 합격시킨 효성물산의 경우 지난해 11월 3명, 지난 1일 10명만을 발령했다. LG화학은 60여명을 신규채용키로 했으나 현재 10명정도가 미발령상태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들은 신규발령이 나지 않아 정식직원이 아니므로 회사측이 채용을 책임지거나 피해를 보상할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취업전문가들은 『발령은 회사내부의 문제일뿐이며 구두나 문서를 통한 합격통지 자체만으로 근로계약은 성립됐다고 봐야 한다』며 『회사측이 이들의 피해를 보상하거나 취직을 알선하는 등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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