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하수필에 그려진 고건총리]재상된 「꼬마 건이」

  • 입력 1997년 3월 4일 19시 39분


코멘트
「세살짜리 개구쟁이 건이」. 4일 국무총리가 된 高建(고건)씨가 57년전인 1940년 본보에 소개됐을 때 불렸던 이름이다. 어렸을 적의 고총리를 본보에 소개했던 사람은 영문학자이자 명 수필가였던 李敭河(이양하·63년 작고)전 서울대교수. 이교수는 연희전문 재직시절 동료인 고총리의 부친 高亨坤(고형곤)전전북대총장의 집에 드나들 때마다 재롱을 피우는 두 아들 「경」(당시 5세)과 「건」(당시 3세)형제를 눈여겨 보아뒀다가 이를 정감있는 수필로 엮어냈다. 「경이 건이」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본보 40년1월21일과 23일자에 나뉘어 실렸다. 『가깝하고 무료한 때 길을 하나 건너 경이 건이를 찾으면 나는 거기 언제든지 나를 백퍼센트 환영하는 두 친구를 발견하는 것이다. 「경이 건이 있나」하고 문을 두드리면 경이 건이는 와당탕 퉁탕 마루를 울리며 문으로 달려 나온다. 그리고 「드와여 드와여」 「드와여 드와여」하며 하나는 바른편 소매를 잡아 이끌고 하나는 왼편 소매를 잡아 이끈다. 눈이 뜨거워지는 순간이다』 『경이가 두 주먹을 그러쥐고 건이에게 달려들면 건이도 지지않고 조그만 두주먹을 꼭 그러쥐고 「야이 권투, 야이 권투」하며 달려든다. 물론 싸움이 아니다. 나를 만나 기쁘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번은 사장해봐야지」 사장이란 것은…이 애들의 재롱의 하나이다. 먼저 경이가 이러서 뒷짐을 지고 배를 내밀며 「이놈!」하고 호령을 한다. 그러면 건이도 덩달아 일어서서 같이 뒷짐을 지고 배를 한층 더 내밀며 「이놈!」하고 호령한다. 그러면 「아이 무서」 「아이 무서」하며 저두평신(低頭平身·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낮춤)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그러면 그럴수록 경이 건이의 배는 불러가고 「이놈」소리는 높아간다』 이 수필은 지난 75∼83년 중학교 3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심규선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