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아이의 「정답」

  • 입력 1997년 3월 4일 08시 56분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때 아내와 나는 비교적 초연하였다. 도무지 설렘이나 기대와 같은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조금 유별나거나 신경이 무딘 편일까. 만일 내 경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었다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엄마, 학교는 몇 년이나 다녀야 하지』 등교 길에 어머니께 이런 질문을 드렸던 때가 초등학교 2학년인 것으로 기억한다. 『글쎄, 앞으로 한 15년쯤. 그런데 왜』 그때 어머니는 이미 내가 대학까지 다녀야 한다고 작정을 하셨는지 끔찍한 숫자를 말씀하셨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1년 남짓 다녔을 뿐인데 벌써 아침에 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고생이 언제나 끝날 지를 물어본 것인데 그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어쩌다가 어머님이 생각하셨던 것보다 훨씬 더 길게 학교에 다녔다. 그런 내가 아이를 기르고 학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생각이 바뀔 리가 없었다. 아, 이 아이도 이제부터 고생길이 시작되는구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내 생각의 주된 흐름은 이런 것이었다. 더구나 나는 이제 그 이상의 것도 알아버렸다. 학교가 끝나도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생각으로는 이런 고생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어떤 바람을 가지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아이에게 무언가 대책을 세워주어야 했다. 그때 세웠던 대책 중에 한 가지가 아이에게 일종의 최면을 거는 것이다. 『학교는 무엇을 하러 가지』하고 물으면 아이는 『공부』라고 대답했다. 『아니야, 학교는 공부도 하지만 친구들 만나서 놀러 가는 거야』 노는 것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이는 이 말을 잘 받아들였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정말로 놀았다. 아이가 시험지를 받아들고 오는 날이면 아내와 나는 웃을 준비를 해야 했다. ▼문제〓토끼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자가 새치기를 하려고 한다. 어떻게 할까요? 아이의 답〓사자에게 자리를 비켜 준다(아빠는 할 말이 없음). ▼문제〓자신의 장래는 어떻게 결정해야 합니까? 정답〓자신이 스스로 결정한다. 아이의 답〓부모님의 뜻에 따라.(만세!) ▼문제〓사람은 어디를 통해서 숨을 쉽니까? 정답〓허파. 아이의 답〓코.(???) 이런 식이다. 아이에게 책에 다 나오는데 왜 틀렸느냐고 물어도 아이의 대답은 당당하다. 그것이 책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확실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우리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건전한 사회인이 될 것 같다. 황인홍<한림대 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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