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New]대학가 하숙문화 『나홀로가 좋다』

  • 입력 1997년 3월 3일 08시 33분


[이성주 기자] 최근 군에서 제대한 연세대 법학과 4년 정모씨(26)는 요즘과 2,3년전의 하숙생활을 비교해보며 흠칫 놀라곤 한다. 그는 학교 부근의 「원룸형 하숙집」에서 묵고 있다. 욕실 벽장 등이 달려있는 독방이다. 하숙생들은 선후배끼리도 말을 높이며 그나마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밥만 먹는다. 옆방의 하숙생과는 대화를 꺼리면서도 낯모르는 사람과는 PC통신을 통해 밤새도록 얘기를 나눈다. 정씨는 『화장실 쓰는 것이 편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그러나 선후배끼리 밤늦게 술판을 벌여놓곤 하던 3년전의 하숙집에 비하면 확실히 삭막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근 2,3년 동안에 옛날식 하숙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옛 하숙문화는 요즘 결혼을 안한 직장인이나 대학원생들이 근근이 이어간다. 3,4년전까지는 취직을 하고 나면 자취하는 이가 많았다. 밤늦게 귀가해 잠만 자기에는 하숙보다는 자취가 어울렸던 것. 그러나 최근 음주횟수가 줄어들고 회사 동료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하숙을 선호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회사원 박경훈씨(29·데이컴 회계과)는 『요즘도 밤이면 하숙집 선후배끼리 함께 밤에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직장인이 정 때문에 하숙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며 결혼한 다음 옛 하숙집에 놀러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옛날식 하숙문화를 신세대들이 외면하자 서울 신촌일대와 신림동 등에선 기존의 하숙집을 헐고 원룸형 하숙집으로 개축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세대들을 끌기 위해서다. 요즘 대학생들이 화장실 사용 등에서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하는 점, 컴퓨터 오디오 등 대학생들의 살림살이가 늘어나는 점도 원룸형이 선호받는 이유다. 서울 신촌 일대에는 재작년부터 방을 20∼30개씩 갖춘 원룸형 하숙집이 늘기 시작해서 지금은 1백가구가 훨씬 넘었다. 원룸형 하숙비는 한달에 55만∼65만원. 2,3년전 대세를 이루던 2인1실 하숙비 25만∼30만원의 배가 되지만 방을 내놓기가 무섭게 나간다. 원룸형 하숙집과 함께 일반 하숙집의 독방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고려대 부근에서 하숙을 치는 김길자씨(55)는 『요즘은 2인1실보다 독방을 찾는 학생이 훨씬 많다. 독방이라도 PC통신을 하기 위한 전화선이 없으면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신세대의 취향은 전세보증금 3천만∼6천만원인 원룸 거주자의 급증으로도 이어진다. 지방의 대학가에서도 원룸빌딩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대학가와 떨어진 서울 역삼동 서초동 등의 원룸빌딩이나 경기 과천시 독신자아파트 등에 입주하는 대학생도 크게 늘고 있다. 이래저래 옛날식 하숙집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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