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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는 기생 아니다』…향토사학자등 왜곡된사실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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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는 기생 아니다』…향토사학자등 왜곡된사실 밝혀내

입력 1997-03-03 08:32수정 2009-09-27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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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박동욱기자] 『논개는 결코 기생이 아니었다』 신안주(朱)씨종친회와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임진왜란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 「게야무라로쿠스케(毛谷村 六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한 朱論介(주논개·논개의 본명·1574∼1593)부인의 신분과 얼을 바로 알리기 위한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신안주씨종친회(회장 朱承珏·주승각)는 최근 『임란의 최대 격전지였던 진주성내 義妓祠(의기사)와 의암사적비 내용에 논개부인의 신분을 잘못 명기한 부분이 있다』며 사적지옆에 이를 바로 잡는 안내문을 세워줄 것을 진주시와 문화재관리국에 요구하고 나섰다. 주회장은 『논개부인은 당시 군사령관격인 경상우병사 崔慶會(최경회)장군의 후실로 1593년6월 2차 진주성싸움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성이 함락된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민족정기를 일깨운 열사였다』며 『사적 자체는 못고친다 하더라도 역사를 바로 알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논개의 고향인 전북 장수에서「주논개얼선양회」 등을 주도하며 20여년간 논개사적연구를 해온 향토사학자 高斗永(고두영·67)씨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총정리한 「의암 주논개」를 곧 발간할 계획이다. 고씨는 『선조때 학자 柳夢寅(유몽인)의 설화집 어우야담에 논개부인이 기생인 것처럼 표현돼 있으나 논개부인이 순국할 때 기생복장을 한 것은 진주성 함락후 왜군의 살육행위를 보고 울분끝에 왜장을 죽이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 왜군의 술자리에 참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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