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우먼 파워]美국무 내정자 올브라이트

입력 1997-01-05 20:05수정 2009-09-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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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李載昊특파원」 이혼한 뒤 딸 셋을 혼자서 키워온 어머니가 국무장관에 내정됐다. 대통령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뇌리에는 먼저 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딸들아, 이제는 너희들이 이 엄마를 걱정해줘야 할 때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될 메들린 올브라이트(59·유엔대사)의 이 한마디는 인상적이다. 어머니로서, 직업인으로서 모두 성공한 한 여성의 긍지가 모성애 속에 녹아있다. 더 큰 비상(飛翔)을 앞두고 어머니는 이제 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 집권 2기의 미국외교를 이끌고 갈 올브라이트는 능력있는 여성의 전형이다. 11세 때 조국 체코가 공산화되자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탈출한 그는 공부도 잘했지만 주어진 기회와 인맥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명문 웨슬리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올브라이트는 지난 20여년 동안 민주당 정치인들과의 교분을 착실히 쌓아왔다. 그의 민주당 진출에는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로 카터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브레진스키의 후원도 큰 힘이 됐다. 82년부터 조지타운대에서 동유럽정치를 강의하면서도 그는 대선때면 민주당후보를 위해 기꺼이 외교자문역을 맡았다. 84년 먼데일후보, 88년 듀카키스후보가 모두 그에게 자문했다. 82년 남편 조셉 올브라이트(언론사 사주)와 이혼한 후 워싱턴 조지타운에 있는 그의 집은 민주당 외교정책 관계자들의 집합장소였다. 올브라이트는 또한 소신있고 배짱있는 여성이다. 93년 클린턴 행정부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 여부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유일하게 공습을 주장했던 일은 유명하다. 클린턴은 결국 공습을 감행했고 이 공습을 통해 데이튼 평화협정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올브라이트의 외교는 보다 강경한 양상을 띠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가 평소 인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학정을 피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조국을 떠났던 동유럽 출신의 한 여성에게 탈냉전으로 기록될 금세기 국제질서의 마지막 4년이 맡겨졌다는 것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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