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보스와 군수

  • 입력 1997년 1월 4일 20시 06분


언제나 새해는 포근히 덮인 눈이불 밑으로 다가오곤 했다. 새해벽두 남해쪽 교도소에 수감중인 K로부터 한 장의 엽서가 날아들었다. 금년에는 사회에서 못배운 한을 풀기 위해서 대학입학 검정고시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이 성취되도록 주님께 빌겠다고 또박또박 적어놓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장기형을 선고 받은 그는 범죄조직의 보스였다. 지존파가 우리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무렵 그 역시 수많은 부하들과 함께 살인 청부상해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우람한 체격의 그들 일행이 칼과 몽둥이를 앞에 늘어놓고 플래시를 받았었다. 그는 마치 우리안에 갇힌 야수처럼 세상을 저주하고 증오했다. 못배우고 돈없는 사람이 그나마 인사를 받고 군림할 수 있는게 어둠의 세계말고 어디있느냐던 그가 사십대에 대학입시 준비생이 된 것이다. 지난해는 「어둠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태양아래서 버젓이 군림하던 사람들도 무수히 뜨거운 법의 세례를 받았다. 전직 국가원수 장관 공무원들이 줄줄이 핏발선 눈으로 카메라를 보며 구치소로 향했다. 비대한 몸 속에 각종 병균이 우글거렸던 건강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단면이었다. 거액의 뇌물죄로 구치소에 들어간 한 군수는 이런말을 했었다. 호송차를 타고 재판을 받으러 가는 도중 차창을 통해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고 평소에 마음 속으로 경시하던 그 생활이 갑자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부글거리는 허영의 거품 속에서 생긴 욕망은 책상밑의 일과 책상위의 일로 사회구조를 이중으로 만들고 그 결과 많은 전과자들이 생겼다. 그러나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 인정받는 사회는 결코 앓아 눕는 법이 없다. 새해에는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게 정녕 정직한 삶임을 알게 해 달라고 함께 소망해 본다. 엄 상 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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