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고속성장 기업인 나승렬 거평그룹 회장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새해엔 우리 모두 국민경제가 처한 상황을 냉정히 돌아보고 힘을 합쳐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난관을 극복해서 재도약의 한해로 만들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羅承烈(나승렬·52)거평그룹회장. 기업인으로서 오로지 「한국경제의 재도약」이 새해소망이라고 밝힌 그의 표정엔 진솔하고 간절한 호소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우리 경제사회가 들뜬 분위기를 보여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지요. 한국내에서의 임금 등 제반 제조비용이 비싸게 먹혀 안되겠다며 발주자들이 발길을 돌려 수주직전의 일감을 동남아 등 제삼국에 빼앗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새해에는 과소비라든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회장은 전남 나주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한 정규 학력이다. 해방둥이로서 6.25전쟁때 부친을 여의고 18세때 무작정 상경, 먹고살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34세때인 79년 금성주택을 설립,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 전해에 제약업에 손댔다가 자본을 절반 정도 날리고 실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한 사업가도를 달려왔다. ―새해를 맞아 희망찬 얘기를 나누어야 하겠는데요. 작년엔 어려움이 많으셨죠. 『일부 계열사의 이익이 당초 연초 목표에 미달하는 실적을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룹 전체로는 흑자기조에서 안정적인 경영을 했다고 봅니다』 그는 경쟁력상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현주소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설 때라고 거듭 강조한다. ―나회장은 지금까지 사업에 크게 성공한 셈인데 우리 경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습니까. 『여러분들이 좋은 의견을 많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기업가가 앞장서고 국민들이 밀어줘 허리띠를 졸라매고 몇년 더 고생하면 재도약도 문제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노사는 투쟁관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거평은 작년말 현재 기계금속 반도체 화학 등의 제조업을 비롯, 건설 유통 무역 레저 서비스 금융부문의 20개계열사에 4천6백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작년 한해 그룹매출액은 1조3천여억원(추정). 이중 건설부문 매출비중은 약 25%인 반면 제조업비중이 50%를 차지한다.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 대동화학을, 지난 94년 대한중석을 인수하면서부터. ―국내 경제계에서 주요 관심사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기업합병인수(M&A)얘기를 좀 하시죠. 거평은 90년대 들어서 M&A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결이라도 있었습니까. 『재무구조가 튼튼한 우량기업만 사들였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잠재능력에다 여유분을 재활용해서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는 기법을 썼지요. 저는 이 회사가 망할 회사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안목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운도 따랐다고 봅니다』 ―쓸만한 회사라고 판단되더라도 기업인수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할 텐데요. 『한가지 예를 들지요. 대한중석은 3차응찰에서 6백61억원에 낙찰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앞서 인수했던 대동화학을 정상화시킨 후 92년에 자산재평가를 실시해서 재평가적립금으로 자본을 늘려두었고 거평의 땅을 담보로 2백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도매센터 분양대금까지 합쳐 6백억∼7백억원의 자금동원은 거뜬했습니다. 포철주식과 부동산 등 보유자산이 많은 대한중석을 인수하고 난 뒤 거평그룹 전체의 신용이 올라가고 재무구조가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그것도 대부분 남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인수후보기업의 재무제표 행간에 숨어있는 회사가치를 평가하고 이 가치 등을 토대로 증권시장과 같은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성, 기업을 인수하는 기법을 활용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작년에 한 상장회사의 소수주주들이 경영권 장악을 위해 M&A에 나서 재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앞으로 이같은 M&A가 자주 일어나리라고 보십니까. 『대량 주식소유를 제한, 무분별한 M&A를 규제하고 있는 증권거래법200조가 오는 4월부터 폐지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단 M&A는 성행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우에 따라선 수년내 M&A를 통해 일부 재벌판도가 바뀌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공격적으로 경영권을 탈취하는 적대적인 M&A사례는 없어야 합니다』 ―앞으로 기업들은 경영권방어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같은데 나회장이 생각하는 최선의 경영권방어책은 무엇입니까. 『「무모한」공격적 경영은 곤란합니다. 물결이 센곳에선 어지간한 잡초와 돌은 모두 씻겨 내려갑니다. 적절한 규모로 안전성있게 기업을 점진적으로 키워가야 합니다. 과도한 투자는 화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가의 역할은 기업풍토를 건전하게 조성해 나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을 이만큼 키워왔으면 나름대로의 경영관을 터득하셨을 것으로 보는데요. 『과욕은 금물이란 생각입니다. 이에 따라 저는 무리한 기업인수나 전망이 불투명한 투자는 절대 안합니다. 또 「자금운용원칙70%론」이라는게 있습니다. 제가 세운 원칙인데요, 자신의 힘을 70%정도 쓰고 30%는 비축해 두어야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게 경험에서 얻어진 지론입니다. 서두르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산봉우리 이론」도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한 봉우리에 오른후 내가 어디에 서있나, 여력이 얼마나 있나를 점검하고 내가 오를 수 있는 새로운 봉우리를 선택해 묵묵히 오르는 것이죠』 <대담=崔熙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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