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무속-역술 열풍]「대선의 해」 정계 『북적』

입력 1997-01-03 20:38수정 2009-09-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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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源杓 기자」 지난해 3월 「국운」이라는 역술 예언서가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정보기관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 내용 중에 『2000년대 첫 대통령은 허씨성을 갖고 있으며 현재 중령이나 대령급으로 군에 몸담고 있다』는 천기누설(?)에 해당하는 엄청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 『許씨가 대통령 된다』 ▼ 이 책을 쓴 역술인 吳在鶴(오재학·34)씨는 문제의 책이 출간된 후 평소 친분이 있는 모 기관 관계자가 찾아와 『「국운」이 나온 뒤 정보기관에 「허씨성을 가진 중령이나 대령급을 찾으라」는 명령이 떨어져 군인사기록을 뒤졌고 그 결과 53명의 해당자를 찾아내 개개인을 체크하느라 혼이 났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구랍 23일 오후5시경 서울 신라호텔 커피숍. 기자는 「도깨비신을 모신다」는 무속인 김재연씨(48·여)를 만나 무속세계에 대한 취재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취재 도중 건너편에 앉아있던 한 50대 중년여성이 아들과 함께 찾아와 김씨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30여분쯤 뒤 또 한명의 50대 여성이 다가와 김씨에게 인사를 건넨 뒤 『옆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겠다』며 나갔다. 기자가 『그들이 누구냐』고 묻자 김씨는 『아들과 함께 온 사람은 현재 야당 최고 실력자 중 한명인 국회의원 모씨의 부인이고 두번째 사람은 지난 14대 때 여당 국회의원의 부인』이라며 『모두 단골손님』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계인사나 기업인들이 중요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 무속인과 역술인들을 찾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에 따라 이름난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우리나라 정계와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에는 이들 무속인과 역술인들을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유명역술인들은 연초(年初)가 되면 새해 국운(國運)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보기관에 보내는 것이 주요업무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이름난 무속인과 역술인들에게는 따로 대목이 없을 만큼 일년 내내 점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번 「용하다」는 소문이 났다하면 유명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서로 먼저 점을 보려고 몰려든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6개월정도 앞서 예약하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다. 수많은 현역정치인 뿐만 아니라 정치지망생들도 『당선될 운수가 있느냐』에서부터 『어느 당을 선택하면 좋은가』 『어느 지역으로 출마해야 하나』 『당총재와 내가 운이 맞느냐』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묻기 위해 몰려온다. 특히 대통령선거때가 되면 유명 점쟁이들의 집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묻는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다. 지난 92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당시 민자당후보인 金泳三(김영삼)씨가 당선될 것이라고 미리 발표해 유명해진 白雲山(백운산)씨는 『3,4월이 되면 지난번 대선 때처럼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를 묻는 정치인들의 방문이 쇄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에 따르면 요즘 유달리 많아진 정치인들의 식사모임에 초대돼 가면 화제는 단연 내년 신한국당의 대권주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선거 때에만 점술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으레 유명 역술인이나 무속인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공시절 3당합당을 할 당시 한 야당 국회의원이 역술인 池昌龍(지창룡·74)씨를 찾아가 3당합당의 성공여부에 대해 자문했던 일은 역술인 세계에선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다. 지씨에 따르면 3당합당을 앞두고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 찾아와 『합당해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실행하라고 조언했다는 것. 또 관상학으로 유명한 申箕源(신기원·57)씨는 『올해초 당적변경을 고심하던 한 여당중진의원의 비서관이 찾아와 자문하길래 「새장에 갇혀있던 새가 풀려난 형국이니 나가더라도 걱정말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 『30개 대기업 터 선정』 ▼ 정치인뿐만 아니라 경제인들도 마찬가지다. 투자문제나 인사 공장부지선정문제 등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점쟁이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다반사다. 풍수지리로도 유명한 지씨는 『현재 30대 대기업을 포함, 3백여개 기업의 공장터는 모두 내가 선정해줬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렇듯 지씨처럼 재계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유명 역술인들은 아예 계약금을 받고 공식적으로 회사고문으로 추대되는 경우도 상당수. 최근 회사마다 명예퇴직 바람이 불면서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무속인 金根永(김근영·38)씨는 『얼마전부터 각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자를 직접 골라 달라는 부탁이 많이 들어왔다』며 『처음엔 한 인간의 사회적 운명을 바꿔놓는 것 같아 망설였으나 회사와 운이 맞지 않는 사람은 일찍 사표내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명예퇴직자 선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민원 해결』 청탁까지 ▼ 김재연씨에 따르면 모재벌그룹 부인은 매년 운수는 물론 회사의 큰 신규사업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와 자문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문제는 정부에서 주관하는 국가 주요건물의 부지선정문제, 주요행사 택일문제 등도 역술가와 무속인들의 조언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유명 역술인이나 무속인들이 우리나라 정계 재계 실력자들과 이처럼 긴밀한 관련을 맺다보니 『높은 분에게 얘기해서 민원을 좀 해결해달라』는 청탁까지 받는 일이 자주 있다는 이야기다. 한 역술인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CF를 좀 따게 해달라』는 것에서부터 『대기업으로부터 하청을 좀 얻게 해달라』는 중소기업인의 민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 이같은 점쟁이에 지배되는 우리 사회분위기에 대해 한 야당 정치인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경제상황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점쟁이를 찾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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