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97 선진정치/대통령의 자질]역대 대통령들 리더십

  • 입력 1997년 1월 2일 20시 02분


「林彩靑기자」 지난 48년 건국후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배출된 대통령은 李承晩(이승만) 尹潽善(윤보선) 朴正熙(박정희) 崔圭夏(최규하)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金泳三(김영삼)씨 등 7명이었다. 이들 중 현직인 김대통령을 빼놓고는 예외없이 쫓겨나거나 피살되거나 투옥되거나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등 마지막이 불행했다. 이러한 종말 때문에 역대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功過)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정치적 리더십 비교는 별개의 문제다. 이전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국부(國父)」로 일컬어질 정도로 신생국의 지도자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그럼에도 그는 재임중 「외교엔 귀신, 내치엔 등신」이란 소리를 들을만큼 국내 물정에 어두웠다. 특히 인사정책의 실패로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박전대통령은 「잘 살아보자」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른바 「조국근대화」를 밀어붙였다. 고(故)金相浹(김상협)전국무총리는 『박대통령은 과오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았고 그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또 고(故)金溶植(김용식)전외무부장관은 『이전대통령의 외교스타일이 대결주의적이었다면 박전대통령은 실리주의적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박전대통령은 측근들끼리 상호 견제토록 하는 용인술을 구사했으나 결국 측근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전전대통령은 박전대통령을 「아버지 모시듯」 철저히 숭배한 추종자였다. 그는 「조국 근대화」 대신 「선진조국 창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박전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을 계승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박전대통령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여론수렴형이었다면 전전대통령은 저돌적이고 즉흥적이며 여론배제형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노전대통령은 『나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타협과 조정 역할을 맡았었다. 나는 또 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평할 정도로 상황적응에 능했다. 「북방외교」의 성과도 그의 성격에 힘입었던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다는 인상을 주어 재임중 「물태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문민대통령」을 자임하는 김대통령은 4년 가까운 재임기간중 전임자들과 비슷한 점도 드러냈고 다른 리더십도 보였다.그러나 아직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 임기가 1년이상 남은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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