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

  • 입력 1997년 1월 2일 20시 02분


첫사랑 〈2〉 매일 나라 안과 나라 밖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디에서 어떤 사고가 나고, 높은 자리의 누가 또 어떤 부정을 저지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더러는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이기도 했다는 그런 기사들 속에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는 여전히 방송 연예 쪽 기사를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 신문에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나오는 새로 나온 책 이야기와 화제의 책, 그 중에서도 매주 화요일 간지에 컬러 사진과 함께 나오는 「명작의 고향」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여자 아이는 조금씩 거기 「명작의 고향」에 나오는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겁니다. 데미안, 첫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적과 흑, 마농 레스코, 위대한 게츠비, 채털리 부인의 사랑, 주홍글씨, 모두 그 기사를 먼저 읽고 그 기사에 도움을 받아 읽은 책들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한 일이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명작의 고향」을 챙겨 읽으며 아직 가슴이 작은 여자 아이는 그 기사 아래에 반복되는 한 기자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하석윤. 그 아저씨의 이름입니다. 아, 좋겠다. 이 사람은…. 어린 여자 아이는 그 기자가 자신이 쓰는 「명작의 고향」에 나오는 작품들의 무대를 모두 둘러본 다음 그 기사를 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나도 훌훌 세상 곳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 기사를 보며 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아니, 그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슬픈 것이든, 격정적인 것이든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장 내일 봐야 할 시험공부까지 밀쳐두고 책상 위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마농 레스코」를 읽던 밤, 여자 아이는 그대로 자기의 작은 가슴이 울렁거리다 못해 아주 터져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도 천부적인 열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하얗게 새운 그 밤에 알았습니다. 어떤 부끄러움 속에서도 나도 이다음 그런 천부적인 열정으로 어떤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위대한 게츠비」를 읽을 때에도 이 다음 누군가 나를 그렇게 찾아올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열일곱 살 때의 저, 채서영입니다. 아저씨의 이름을 밝혔기에 이제 제 이름을 밝힙니다. 채서영(蔡瑞英). 한자로는 이렇게 쓰는 이름이라고. <글: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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