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승자총통과 벚꽃축제

  • 입력 1996년 10월 26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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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됐던 거북선 별황자총통이 가짜로 밝혀져 국민을 경악시켰다.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한 대령의 집착이 낳은 비극치고는 너무 희극적이다. 발굴당시 그것을 사흘만에 부랴부랴 국보로 지정했던 코미디는 또 어떤가. 충무공의 호국얼을 증명하려면 기어코 갯벌 속에서 거북선을 찾아내야만 하는가. 문화는 꼭 물질적 증거로 입증되어야 하는가. 김윤식이 1860년에 지은 시를 보면 당시까지 여수 진남루 언덕 위에 거북선은 얹혀 있었다. 멀쩡하게 구한말까지 있던 거북선을 왜 수십억원의 예산을 낭비하며 바닷속에서 찾는가. 찾아질 리 없는데 찾아내라고 하니 급기야 가짜 대포라도 만들 궁리가 나온 것이 아닌가. 구한말의 문장가 김택영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충무공이 거북선 때문에 일본을 깨뜨렸다고 하나 충무공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은 천변만화하는 계책이 신묘했기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아끼고 계승해야 할 것은 충무공의 정신이지 거북선이 아니다. 승자총통 아니라 거북선을 원형 그대로 건져 올린다 해도 그것으로 충무공의 거룩한 정신이 오늘에 되살아나라는 법은 없다. 해마다 진해에서는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선양한다는 단체의 주관 아래 벚꽃 축제가 성대하게 열릴 것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만 상춘객의 물결이 흔흔한 달빛 아래 브라보를 외쳐댈 것이다. 정 민(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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