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세상읽기]섭섭하게…

  • 입력 1996년 10월 18일 22시 05분


내 친한 친구중에 「섭섭이」가 있다. 정이 많고 언제나 남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마음씨 고운 여고 동창인데 말끝마다 「섭섭하게」라는 토씨를 달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십 몇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이 친구의 레퍼토리는 「글쎄 아 무개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섭섭하게」다.자기가 잘해 주었던 사람들에게늘무엇 인가섭섭하다는 거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오랜만에 내게 전화를 해서 하는 첫 마디 역시 『글쎄 우리 동서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섭섭하게』였다. 얘기인즉, 이번 추석때 부산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시댁으로 명절을 쇠러 갔단다. 식사때 남편이 동서에게 아구찜 한 접시를 해달랬더니 시킨 음식을 내오며 『2만원 이라예』라면서 돈을 받더라는 것이다. 『나는 자기식구들이 서울에 오면 온갖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데 모처럼 내려간 시 동생에게 글쎄 그 음식값을 받아야 하겠니. 섭섭하게』 이 친구말을 들으니 며칠 전 내가 섭섭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 회사 신입사원연 수 강연을 가서였다. 잘 아는 분의 소개였기 때문에 강연료를 물을 때 『알아서 주 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두 시간의 강연을 끝내고 받은 액수는 생각보다 너무 적었 다. 『이 분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섭섭하게』회사차원의 공적인 행사라 나는 당 연히 외부강사 수준의 강연료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 분은 잘 아는 사이니까 그 저 예의만 표시했던 것이다. 적게 받은 강연료때문이라기 보다는 강사로서의 나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 같아 몹시 서운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와 내 친구의 「섭섭증」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다. 나는 내 의사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그쯤은 「알아서」해 줄 거라는 기대만 한 것이다 . 정말로 얼마를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면 섭섭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이 아니 라면 애초에 강연료에 대해 확실히 얘기를 했어야 했다. 내 친구는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이상으로 해 준 것이다. 자기 힘에 버거울 정도로 해주고 나면 「내가 이 정도까지 할 만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형태로든 상대방에게 반대급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섭섭하다는 감정은 생각대로 해 주지 않은 상대방때문이 아 니라 이쪽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 않거나 기꺼이 할 수 있는 이상을 해 준 우리 자 신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섭섭아, 너도 내 말이 맞지?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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