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항소심]광주피해자 증인채택 法理논쟁

  • 입력 1996년 10월 18일 09시 02분


『시위를 구경하던 40대 남자를 끌고 가는 계엄군 병사를 70대 할머니가 말리자 그 자리에서 곤봉으로 내리쳤습니다. 계엄군의 시위진압은 해산작전이라기보다는 시 민 살상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1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증언대에 선 李樣賢씨(46· 사업·광주 서구 화정동). 李씨는 광주시위 피해자 자격으로는 처음 증언대에 섰다. 그의 뇌리에 박혀있는 80년 5월은 「끔찍한 악몽」 같은 것이었다. 李씨의 증언은 계속됐다. 『80년 5월18일 오후7시경 계엄군이 붙잡힌 시민들을 팬 티만 입히고 손을 뒤로 묶은 채 트럭으로 끌고 갔으며 트럭이 빨리 달리자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개끌리 듯 끌려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李씨는 『이같은 계엄군의 초기 진압방식이 광주시민들의 공분을 일으켜 대규모 항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李씨는 또 『5월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한 발자국씩 전진하자 경고방송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M16 소총을 마구 쏘아댔다』고 증언했다. 李씨는 이와 함께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작전 당시 계엄군은 항복을 선언하 고 손을 들고 나오는 시민까지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80년 5월 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로 시위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김영역씨(60) 는 『5월18일 오후 4시경 동아일보 광주지사 사무실 맞은편 도로에서 여자 1명이 옷 이 거의 발가벗겨진 채 구타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취재내용을 토대로 「7일간의 취재수첩」 「5.18광주민 중항쟁」 등 2권의 책을 쓴 金씨는 발포와 관련한 중요증언을 하기도 했다. 『21일 오전 전남도청앞 집단발포가 발생하기 직전 계엄군이 실탄을 분배하는 장면을 직접 봤으며 일부 계엄군은 빌딩옥상에 올라가 시위주동자들을 조준사격하기도 했다』는 것. 이들의 증언이 2시간반 가량 계속 이어지는 동안 방청객들은 『그럴 수가…』를 연발하며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변호인들마저도 숙연한 표정이었다. 〈河宗大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