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186)

  • 입력 1996년 10월 17일 10시 15분


제5화 철없는 사랑〈25〉 궁전으로 달려간 알 무인은 왕이 기거하는 방의 창 밑에 서서 외쳤다. 『오, 현세의 임금님. 임금님의 치하에 임금님의 신하는 끔찍한 변을 당하였습니 다』 그래서 시종들이 달려와 그를 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왕은 대신의 그 참담한 꼴 을 보자 너무나 놀라 물었다. 『대관절 누가 그대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는고?』 그러자 알 무인은 흐느껴 울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임금님 치하에서 이런 학대를 받는 이몸, 사자가 있건만 이리에게 뜯어먹히는 이몸, 임의 음료수가 있건만 못된 건달들이 마셔버리고, 이몸은 비올 날 기다리며 하늘만 쳐다보네. 노래를 마치고난 그는 말했다. 『오, 임금님. 이런 일이 임금님을 사랑하고 임금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랍니다』 그러자 왕은 다시 한번 다그쳤다. 『어서 말해보라.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누가 감히 나의 대신인 그대에게 그 런 행패를 부렸는지. 그대 체면은 곧 내 체면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왕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내비쳤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저는 오늘 요리하는 계집을 사려고 노예시장엘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보기 드문 계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한 여 자였기 때문에 저는 그 여자를 사서 임금님께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간꾼에게 그 여자의 임자에 대하여 물었더니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알 화즈 르 빈 하칸의 아들인 아리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태 전에 임금님께서 알 화즈르에게 일만 디나르를 주고 예쁜 노예계집을 사오라고 분부하신 바 있는데, 그때 그자는 여자를 하나 사놓고 보니 너무나 마음에 들어 임금님께 바치기가 아까 워 자기 아들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알 화즈르가 산 여자가 바로 오늘 제가 사고자 했던 여자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비가 죽자 아리는 집을 비롯하여 가재 도구까지 모조리 팔아먹고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그 계집을 팔 려고 시장에 데리고 나왔던 것이랍니다. 상인들은 값을 자꾸 올려 나중에는 사천오백 디나르나 되었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이 여자를 사다가 맨 먼저 대금을 지불하신 임금님께 갖다바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르 알 딘을 불러 「여보게, 나한테 사천오백 디나르에 팔지 않겠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그자는 저를 힐끔힐끔 흘겨보면서 소리쳤습니다 . 「이 재수없는 늙다리야! 비록 유태인이나 나자레인한테 팔지언정 네놈한테는 팔 수 없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자에게 애원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갖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 라네. 임금님께, 인자하신 임금님께 바치려고 사는 것이라네」하고 말입니다. 그러 자 그자는 길길이 뛰며 이 늙어빠진 저를 말에서 끌어내리더니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려 마침내는 보시는 바와 같은 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임금님을 위해서 그 여자 를 사려다가 그만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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