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안톤 체호프의 고향 러시아 타간로크

  • 입력 1996년 10월 15일 0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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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크(러시아)〓金順德기자」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천1백여㎞ 내려오면 흑해 와 맞닿은 아조프해 연안의 소도시 타간로크에 이른다. 3백여년전 러시아가 유럽 열 강의 일원으로 비약하기를 꿈꾸었던 표트르대제의 동상이 바다너머 유럽을 바라보고 서있는 곳이다. 「귀여운 여인」 「벚꽃동산」 등 주옥같은 단편과 희곡을 남긴 러 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가 나서 열아홉살까지 자란 이 곳에 그가 태어난 집과 살았던 집, 학교 그리고 그의 산책길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타간로크의 중심가인 체호프가(街) 69에 자리잡은 체호프의 생가는 초록색 함석지 붕을 머리에 얹은 오두막집이었다. 두평 남짓한 거실, 침대와 옷궤짝을 놓으면 꽉 차는 두개의 방이 고작인 곳이지만 이 집의 관리자 갈리나 알렉산드로브나는 『세계 각국에서 1년에 10만여명이 찾는 문화 명소』라고 자랑했다. 스베를로바가(街) 100 대로변에 있는 또하나의 집은 체호프가 아홉살부터 열네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1층이 잡화점, 2층이 살림집으로 초록색 커튼이 쳐진 커다란 거실과 피아노까지 갖추고 있으나 체호프 자신은 뒷날 『나는 소년시절이 없었다』고 말할 만큼 불행했 던 곳이었다. 지독한 폭군에 고지식한 장사치였던 아버지가 4남1녀의 어린자식들을 밤11시까지가게에서 설탕과 차를 팔게 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매질까지 했기 때문이 다. 2층 체호프의 방 창가에는 작은 테이블과 펜대가 그대로 놓여있다. 이곳에서 쓴 희곡이 마을극장과 교회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는데 평범한 일상속에 빛나는 유머, 인 간은 동정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 등 그의 작품속에 흐르는 정신은 이때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체호프가 다녔던 중등학교 김나지움은 지금 체호프박물관으로 변해 있다. 1층 교 실에 있는 그의 책상은 교탁에서 볼때 오른쪽 맨뒷자리다. 성적은 5점만점에 3점이 었고 3학년과 5학년 때는 유급을 당하기도 해 학교공부를 잘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교육과정은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대부분이었으나 체호프는 일생동안 이 두 언어에 대해 혐오감을 지닌채 세련되고 우아한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 1898년에 쓴 작품 「상자속의 인간」에서 사사건건 동료 일에 참견하고 입으로는 그리스어만 내뱉는 데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혐오스러운 김나지움 선생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체호프의 학교생활도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낙천적 성격의 체호프지만 자기 인생의 두가지 「재난」으로 폭군 아버지를 둔 것 과 그 아버지의 가게가 자신이 열여섯살 때 망해 집안이 풍비박산된 것을 꼽는다. 이 때문에 열아홉살에 모스크바대 의학부로 떠날 때까지 그는 고학으로 학교를 마쳤 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짧은 유머소설을 쓰면서 문필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모스크 바에 있으면서도 고향후배들을 위해 여러가지 책들을 모교에 보낸 것이 이 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타간로크는 체호프에게 그리운 고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1887년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 묘사된 이 곳은 「그저 먹고 잠자고 번식하며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 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일 뿐이다. 더구나 거리며 건물들이 체호프가 살던 시 대 그대로일만큼 손톱만큼의 발전도 이뤄지지 않아 이방인의 눈에 초라해 보이는 곳 이기도 하다. 그러나 체호프가 자주 다니던 아조프해 바닷가의 산책로는 「체호프의 산책길」, 도시에서 가장 큰 공원은 「체호프의 동산」, 그가 자주 관람하던 극장은 「체호프 극장」으로 불릴 만큼 타간로크 시민들은 체호프에 대한 사랑과 문화적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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