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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02:58: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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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화물세탁 의심”… 거제까지 간 배 부산으로 회항시켜

지난달 22일 국가정보원과 해양경찰청의 북한 컨테이너 4개 압수 작전은 긴박하게 이뤄졌다. ○ 파나마 선적 화물선 회항시켜라 북한 컨테이너를 실은 파나마 선적 화물선 ‘MSC 라첼레(RACHELE)’호가 부산 신항에 도착한 것은 9월 21일 오전 11시였다. 이틀 전인 19일 중국 톈진(天津)을 출발한 이 화물선은 부산 신항에서 하룻밤을 정박한 뒤 이튿날 정오에 다시 출항했다. 그러나 이 화물선이 거제도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한국 국가정보원 등 유관 기관들의 협조 요청을 받은 해양경찰청 소속 경비정이 다급히 쫓아와 배를 세웠다. 배는 다시 부산 쪽으로 머리를 돌려야 했다. 배가 부산항에 재입항한 것은 출발 후 12시간 가까이 된 오후 11시 40분. 이후 국정원과 해경 요원 등으로 구성된 수색조가 배 안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항 관계자들도 급하게 동원돼 북한의 것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4개를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점으로 보면 검색 작업은 밤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컨테이너 4개는 부산항에 하역됐다. 배는 다음 날인 23일 오전 10시 부산항을 다시 출발했다. ○ 한미 정보당국, 국제공조 통해 ‘화물세탁’ 확인한 듯 국정원이 중국에서 온 배가 북한 컨테이너를 실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국제공조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등 관련 우방국과 국제공조를 벌인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찰위성 등이 북한 남포항이나 신의주항 등 북한 지역을 출발한 배가 의심스러운 컨테이너를 싣고 톈진을 들러 부산으로 향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국정원에 통보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또는 북한이 톈진항에 미리 가져다 둔 컨테이너가 문제의 배에 실리는 것을 한미 정보 당국이 ‘휴민트(대인정보)’를 통해 확인했을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파나마 선적의 배를 회항시킬 수 있었던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나 1874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결의는 북한의 WMD 관련 수출 또는 수입을 막기 위한 국제공조를 명시하고 있다. 국정원이 압수의 지휘를 맡은 것도 국제공조를 뒷받침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국제적인 범죄나 범죄 의심 행동에 대해 국외 정보기관들과 협조해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북한이 고전적인 ‘화물세탁’ 수법을 사용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1990년대 이후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기 곤란한 물건을 다른 나라 명의의 컨테이너에 실어 외부로 운반해 왔다”고 증언했다. 이 탈북자가 증언하는 수법은 이번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북한이 외국 선적의 배를 불러 컨테이너를 반만 채운 채 중국 다롄(大連)항 등으로 보내면 이 배는 현지의 물품으로 컨테이너의 나머지를 채운 뒤 서류에는 모두 중국 등의 물품이라고 표기하고 북측이 원하는 해외로 컨테이너를 운반해 준다는 것이다. ○ 풀리지 않은 의문점 우선 컨테이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가 확인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방호복 등 화학무기 관련 물품이되 WMD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크다고 보기 어려운 품목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자가 화학무기 방지 국제 협력체제인 ‘호주그룹(Australia Group)’과 관련된 품목임을 시인하면서 “화학무기도 아니고 화학무기원료도 아니고 화학무기 제조 설비도 아니다”라고 언급한 대목도 방호복 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다른 정보 관계자는 “화학물질이 아니면 전자제품”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전자제품일 경우 비행기 등의 이동을 교란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기 종류일 수도 있다”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정부 당국은 문제의 내용물이 확실하게 북한 소유인지를 최종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찰위성 등이 문제의 배가 북한에 정박한 사실을 확인했더라도 문제의 내용물이 중국에서 선적한 물품과 섞였다면 과연 어떤 물품이 북한 것인지를 확정하기 어렵다. 한 당국자가 “북한 물품인지를 100%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물이 무엇인지와 이것이 북한 것인지에 대해 관련국들이 함구하는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문제의 배가 왜 부산항에 정박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이 내용물을 더 확실하게 세탁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하는 배를 택했을 수 있다. 또 한국 정부가 현재까지 한 번도 북한 관련 화물을 검색 또는 압수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급유 등 단순한 기술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부산항을 출발한 배가 곧바로 싱가포르로 갔는지, 다롄항 등 중국 항구를 거쳐 갔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문제의 선박은 현대重서 건조… 컨테이너 7800개 실어 북한 컨테이너 4개를 싣고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신항에 들어왔다가 23일 출항한 ‘MSC 라첼레(RACHELE)’호는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2005년 4월 건조한 대형 컨테이너 운반선이다. 이 배는 부산신항을 출항한 뒤 5일 오전 싱가포르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적은 파나마로 돼 있지만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해운회사 MSC(Mediterranean Shipping Company)가 소유하고 있으며 한꺼번에 컨테이너 7800개를 실을 수 있는 7800TEU급 선박이다. 선체 길이가 334m에 이르는 9만 t급 규모의 이 컨테이너 운반선이 부산신항에 입항할 당시 정확한 컨테이너 적재량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컨테이너 관련서류에는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의 종류와 출항지, 최종 하역항 등이 기재돼 있어 국가정보원 등 당국은 어렵지 않게 북한의 컨테이너를 찾아 부산신항에 하역한 뒤 조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MSC는 컨테이너 물동량과 선박 보유수(391척) 부문에서 세계 2위 규모의 회사로 유럽을 본거지로 해 아시아 지역 등을 오가는 글로벌 해운회사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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