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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 1승의 추억, 공부하는 세현고가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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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 1승의 추억, 공부하는 세현고가 잇는다

이헌재 기자 입력 2019-06-19 16:36수정 2019-06-1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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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학벌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고졸이 대졸보다 우대받는 분야가 있다. 바로 프로야구다. 실력 있는 고졸 선수들은 대개 프로에 직행한다. 신인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기량을 다듬을 필요가 있는 선수들은 대학에 간다. 그런데 최근에는 4년제보다 2년제 대학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 KBO 규정상 고졸 또는 대졸 선수들만 신인 지명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프로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간판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야구계에서 서울대는 참으로 애매한 팀이다. 공부로는 한국 최고일지 몰라도 야구로는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옛날 얘기지만 서울대와의 경기에서 실점을 했다는 이유로 상대 팀 감독이 벤치에서 자기 팀 선수들을 때린 적도 있다. 엘리트 야구 선수 출신이 거의 없는 서울대 야구부는 ‘동네 북’ 취급을 받았다.

서울대의 반란은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2004년 9월 1일 열린 전국대학야구추계리그 예선에서 송원대를 2-0으로 꺾었다. 1무 199패 후 거둔 첫 승리였다. 전무후무한 승리를 이끈 사람은 탁정근 감독이었다.

제7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탁 감독은 올해 창단한 세현고의 지휘봉을 잡고 이 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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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있는 세현고는 다른 학교들과는 다르다. 23명의 야구부원은 일반 학생들과 함께 정규 수업을 모두 듣는다. 운동은 7교시가 끝나는 평일 오후 4시 반부터 해가 남아있는 7시 정도까지만 한다. 목요일 오후에는 훈련 대신 야구 영어나 수학을 배운다. 야간 훈련은 자율이다. 주말 훈련은 당연히 없다.

중학교 때 야구를 잘 못했던 선수,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선수들을 주로 뽑았다. 야구를 한 적은 없지만 꼭 하고 싶어 하는 선수도 받아들였다. 조건은 딱 하나였다. “야구를 하되 학교생활은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18일 열린 황금사자기 1회전에서는 광명공고에 콜드게임으로 지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선수들은 즐겁게 야구를 한다. 서울대 야구부는 첫 승리까지 27년이 걸렸다. 하지만 세현고는 주말리그에서 이미 두 차례나 승리를 맛봤다.

탁 감독은 “운동과 공부를 함께하면 긴 인생에서 선택지가 늘어난다”며 “반드시 운동으로만 성공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4년 서울대 야구부의 1승 멤버 중에는 프로야구에서 일하는 사람이 꽤 된다. 박현우와 신동걸은 각각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와 운영팀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우석 KT 위즈 운영팀 과장도 서울대 야구부 투수 출신이다.

탁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 때 맺은 인연이 지금도 끈끈히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로 도우면서 산다”며 “세현고 제자들에게도 함께 땀 흘렸던 지금이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야구는 탁 감독의 인생도 바꿔 놓았다. 야구 명문 장충중-배명고를 다녔지만 한 번도 선수로는 뛰어보지 못했던 그는 감독으로 고교 야구 최고 권위의 황금사자기 무대를 밟았다. 미래는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법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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